지난 8월 출산 후 4개월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한 서희경. 결혼과 임신, 출산을 통해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된 서희경은 "과거처럼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아들을 위해서라도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골퍼로 남고 싶다"고 했다.[사진 고성진 프리랜서]
‘엄마 골퍼’ 서희경(28·하이트)이 다시 골프 클럽을 잡는다.
지난해 11월 은행원 국정훈(35)씨와 결혼한 서희경은 지난 8월 아들 도현이를 낳았다. 임신 이후 태교에 전념하면서 올 4월 투어 활동을 접었고, 골프 대신 꽃꽂이와 바느질로 시간을 보냈다.
다시 골프 클럽을 잡은 건 8개월 만이다. 12월 중순 체력훈련을 시작한 서희경은 매일 2~3시간씩 훈련에 매달리고 있다. 출산으로 16㎏나 불었던 체중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서희경은 “처음엔 클럽이 무겁게 느껴졌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몸도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사무국에 출산휴가를 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투어에 복귀할 수 있다.
여성 운동선수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서희경도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서희경은 “임신과 출산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를 낳고 난 뒤 그의 삶은 한층 여유로워졌다. 서희경은 “과거에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행복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주위 사람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는 엄마 골퍼들이 많다. 1980년 결혼한 줄리 잉크스터(54·미국)는 83년 LPGA 투어에 데뷔해 90년 큰딸 헤일리(24), 94년 둘째딸 코리(20)를 낳았다. 잉크스터는 두 딸을 투어에 데리고 다니면서 키웠다. 주부와 프로골퍼라는 1인2역을 해내면서도 LPGA 투어 통산 31승을 거뒀고, 이 가운데 출산 이후 18승을 기록했다. 1999년에는 4대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카트리오나 매튜(45·스코틀랜드)는 2009년 5월 둘째딸 소피를 낳고 11주 만에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화제가 됐다. 전 세계랭킹 1위 크리스티 커(37·미국)와 카린 이셰르(35·프랑스), 마리아 요르트(41·스웨덴)도 아이와 함께 투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여자 골퍼들은 아이를 낳은 뒤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2009년 아들을 낳은 김미현(37)은 2012년 부상과 육아 등의 문제로 은퇴했다. 이후 한희원(36)과 장정(34)이 주부 골퍼로 활약했지만 두 선수가 은퇴하면서 서희경이 유일한 엄마 골퍼로 남았다.
한국 여자 골퍼들이 출산 후 투어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출산 뒤 신체적인 변화는 크지 않지만 의지와 사고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박원 J골프 해설위원은 “출산 이후엔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연습량이 줄 수밖에 없다. 그런 선수들에게 육아는 성적 부진의 이유가 될 수 있고, 이는 투어 생활 포기로 이어진다”고 했다.
탁아 시스템이 잘 갖춰진 외국과 달리 한국은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엄마 골퍼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든다. 출산 전에는 “아이 둘을 낳고도 건재한 잉크스터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서희경도 복귀를 결정했지만 여전히 고민이 많다. 그는 “복귀를 하게 되면 도현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서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옛날처럼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준비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