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은 아버지와 함께 인터내셔널 크라운이 열리는 메리트 골프장에 나섰다. [사진 성호준 기자]
20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국가대항전인 UL인터내셔널 크라운이 열리는 시카고 메리트 골프장은 후끈했다. 기온이 35도가 넘었다. 선수들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대부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양희영(27·PNS창호)은 쉬지 않았다. 뙤약볕 속에서 웨지 연습을 했다. 5야드 마다 고깔을 세워놓고 샷을 했는데 공은 목표 한 발자국 이내에 정확히 떨어졌다. 양희영은 "국가대표 처음 하는 거라서 다른 대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라요. 컨디션도 좋고 팀워크도 좋고 잘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버지 양준모(52)씨는 평소 딸을 따라다니지 않는데 이번 대회를 보러 왔다. 딸을 보면서 평소 매우 무뚝뚝한 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양씨는 "드디어 우리 딸이 국가대표를 하게 됐네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아버지, 엄마는 올림픽에는 못 가봤는데 딸이 제일 나아요"라면서 양희영의 등을 두드렸다.
남자 골프 대표로 출전하는 안병훈(25·CJ)의 부모 안재형과 자오즈민은 스타 선수 출신이다. 올림픽에서 메달도 땄고 냉전시대 철의 장벽을 넘어 데이트를 하면서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양희영의 부모님도 모두 국가대표 출신이다. 비인기 종목이어서 유명하지는 않다. 아버지 양씨는 86 서울 아시안게임 카누, 어머니 장선희(52)씨는 창던지기 대표였다. 양씨는 매우 성실한 선수였다. 어머니 장씨는 더 했다. 양씨는 "와이프가 엄청나게 운동을 열심히 했다. 윗몸 일으키기를 나보다 더 많이 하고 무거운 바벨을 들었다"고 말했다. 양준모씨는 운동을 잘 하는 장씨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했다고 한다.
양씨는 80년대 카누 한국 기록을 보유했고 장씨는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땄다. 그러나 올림픽에는 가지 못했다. 양씨는 "세계선수권까지는 나가봤지만 올림픽 기준 기록을 통과하지 못했다. 우리 집안의 아쉬움"이라고 했다.
딸은 LPGA 최고 선수들이 뛰는 UL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또 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됐다. 메달 가능성은 어떨까. 양씨는 "올림픽은 출전 선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국가 안배 때문에 잘 하는 선수 일부가 나오지 못하며, 특히 우리 희영이가 큰 경기에 강하니까요..."
양희영 집안 식구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성실한 운동선수 집안답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그가 이 정도 말했다면 가능성과 의욕, 또 기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태릉인' 부모를 둔 양희영은 주니어 선수 시절 퍼트 연습을 할 때는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허리를 펴지 않고 퍼트를 했다. 그래서 그의 티셔츠 등 부분만 볕에 누렇게 바래기도 했다.
운동 밖에 모르던 양희영은 2014년 잠시 방황했다. 양희영은 친구들에게 "그동안 누구를 위해서 골프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부모님에게 "나 오늘 경기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돌어 와도 놀라지 마세요"라고 했다. 다른 선수들은 흔히 겪는 일이지만 양희영 집안에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양희영은 6개월 정도 배회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양희영은 "이제 골프가 재미있어요. 올해 목표가 인터내셔널 크라운과 올림픽 출전이었는데 일단 그걸 이뤘으니 여기서 우승하고 올림픽 메달 따와야죠. 금메달이면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실 거에요"라고 말했다.
여자 골프 국가대항전인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22일 개막한다. 8개 국가 중 톱시드를 받은 한국은 양희영과 김세영(23·미래에셋), 전인지(22·하이트진로),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이 출전한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인 한국은 22일 중국, 23일 대만, 24일 호주와 포볼 매치플레이를 벌인다.
대회는 112년만에 복귀하는 올림픽 골프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올림픽 참가 선수 중 16명이 이 대회에 나온다.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2위 브룩 헨더슨(캐나다)은 자국에 뛰어난 골프 선수들이 부족해 출전하지 못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국가당 세계랭킹 500위 이내 최소 4명의 선수가 있어야 한다.
JTBC골프에서 대회 첫 날 경기를 22일 오전 1시부터 생중계한다.
시카고=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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