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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 위해서라면" 하루 8km 걷는 84세 조부

성호준 기자2016.08.23 오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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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씨는 두 차례 위암 수술로 위가 없다. 23일 대견한 손녀 박인비를 끌어안고 있는 박병준 씨. [JTBC골프]

박인비(28.KB금융그룹)를 안은 할아버지 박병준(84) 씨의 어깨가 떨렸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내 손녀가 이제 대한민국의 딸이 됐다”고 했다. 손녀는 “할아버지 왜 우세요”라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드렸다.

23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한 박인비를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맞았다. 박병준씨는 위암 수술을 두 번 받았다. 2년 전 위 절반을 잘라내고 1년 전 나머지 반도 잘라냈다. 위가 없다. 박씨는 그러나 허리가 꼿꼿하다. 그는 “인비 때문에 나도 건강하다”고 말했다.

박병준씨는 손녀가 경기하는 날 분당 집에서 병원까지 왕복 8km를 꼭 걸어서 다닌다. 가족들에 따르면 박병준씨는 자신이 4km를 걸으면 인비가 4언더파를 치고, 8km를 걸으면 8언더파를 칠거라고 믿는다. 손녀의 선전을 기원해 걸으면서 박씨도 덩달아 건강해진 것이다.

박씨는 요즘 건강이 예전만 못하다. 박인비가 올해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에 나가지 않아 박씨가 걸어야 할 날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에 힘이 빠져 계단을 잘 못 디뎌 크게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올림픽 전초전격이었던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틀간 36홀을 돌며 손녀를 응원했다.

박인비는 자신을 위해 골프장의 구불구불 산길을 걷는 할아버지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 박인비가 부상과 나쁜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힘을 낸 이유일지도 모른다.

박병준씨는 손주가 8명 있다.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55)씨에 따르면 “아버님은 오직 인비만 유달리 아낀다”고 했다. 박인비가 큰 아들의 맏이여서 데리고 살아서이기도 하며 함께 골프를 해서다. 박인비가 초등학교 골프대회에 나갈 때 할아버지가 따라나가 가슴 졸이며 경기를 지켜봤다. 박인비의 모친 김성자(53)씨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애착감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박인비의 빼어난 퍼트 실력은 할아버지 때문이라는 얘기도 한다. 박인비는 초등학교 때 드라이버와 아이언샷은 아주 잘 했는데 퍼트를 잘 못했다. 한 홀에서 4퍼트, 5퍼트를 하는 일이 수두룩했다. 박병준씨가 퍼트 기술을 알려줬다.

2008년 박인비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도 할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몇 개 대회에서 마지막에 무너지며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박병준씨는 “네가 LPGA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는 게 할아버지 마지막 소원이다. 우승하면 나도 똑같이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박인비는 우승했다.

박씨는 1932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가난해서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손재주가 좋았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전에 우유병은 뚜껑 대용으로 비닐을 씌워 고무줄로 묶어 썼다. 위생도 좋지 않았고 잘 샜다. 박병준씨는 69년 이전에 없던 병마개를 개발해 자수성가했다. 한국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도 크다. 6.25 전쟁에 참전해 받은 훈장을 유난히 아낀다.

그런 그의 손녀가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박인비는 “18번 홀에서 울렸던 애국가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노래보다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박병준씨는 “내 손녀가 이제 대한민국의 딸이 됐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2020년에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면 올림픽 금메달은 좋은 목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손가락 통증 등의 경과를 보고 복귀시기를 정해야 할테지만 에비앙 챔피언십이 마음속에 가장 나가고 싶은 대회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아무도 못해 본 슈퍼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욕심난다는 얘기다.

성호준, 김두용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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