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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함과 비신사적인 플레이 경계에 선 크리스티 커

김두용 기자2017.05.02 오전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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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커는 LPGA투어 텍사스 슛아웃 최종 라운드에서 박인비와 함께 동반 플레이를 펼쳤다. 감정 표출에 거침이 없는 커는 동반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롯데 제공]

4위-7위-우승-준우승.

한국 자매의 우승 레이스에 가장 무서운 경쟁자로 떠오른 베테랑 크리스티 커(미국)의 최근 4경기 성적표다. 박세리와 같은 1977년생이지만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듯한 종횡무진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은퇴를 선언한 박세리와 달리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훌륭한 경기력을 뽐내고 있어 부러움을 사고 있다. 커는 1997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퀄리파잉(Q)스쿨에서 박세리와 함께 공동 수석을 차지한 바 있다. 투어 카드를 잃어 다시 Q스쿨을 봐야 했던 커는 LPGA투어 데뷔는 박세리보다 1년 빨랐다.

커는 지난 1일 끝난 발룬티어스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프리젠티드 바이 JTBC에서 6차 연장 접전 끝에 노무라 하루(일본)에 패해 2개 대회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만약 승리했다면 커의 생애 첫 2연승 기록으로 남을 뻔했다. 커는 불혹의 나이인 40세에도 딸 뻘 선수들과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올해 58만6723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커는 유소연에 이어 상금 순위 2위를 달리고 있다.

1997년 LPGA투어에 데뷔한 커는 21년째 투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체력 관리를 잘해 큰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하고 있고, 매년 20경기 이상 출전하는 ‘철인’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꾸준함뿐 아니라 기량도 돋보인다. 2006년 세계랭킹 시스템이 도입된 후 미국 선수 중 처음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이 바로 커다. 그는 2010년 5주간 세계랭킹 1위에 머물렀다. 통산 19승으로 LPGA 통산 승수 부문에서 공동 27위를 달리고 있다. 통산 상금 순위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카리 웹(호주)에 이은 3위를 질주하고 있다.

커의 기량 못지않게 주목을 끄는 건 그의 성격과 매너다. 노련한 플레이와 비신사적 플레이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불 같은 성미의 커는 입에 필터가 없다. 나오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감정 표출에 거침이 없다. 땍땍거림과 과격한 행동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래서 커와 동반 플레이를 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선수들이 많다. 요즘 흔히 말하는 ‘센언니’다.

최근 2개 대회였던 롯데 챔피언십과 텍사스 슛아웃 최종 라운드에서 커는 공교롭게 한국 선수와 동반 플레이를 펼쳤다. 롯데 챔피언십의 챔피언 조에서 장수연과 우승 경쟁을 펼쳤고, 텍사스 슛아웃 때는 챔피언 조 앞에서 박인비와 짝을 이뤘다. 장수연과 박인비는 그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최종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우승에 실패했다. 반면 커는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다.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장수연이 주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 중 하나가 “커의 행동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플레이를 해라”는 말이었다. 그만큼 커는 동반자의 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들을 많이 한다. 샷 전후 매우 시끄럽다. ‘stop’, ‘go’ 등 마치 공에 주문을 걸 듯 쉴 새 없이 고성을 내지른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거친 욕설을 내뱉거나 클럽을 내치며 화풀이를 한다. 이런 행동들은 동반자에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특히 루키나 어린 선수들의 경우에 기선제압을 위해 이런 행동들이 더 커진다. TV 중계 카메라에 비쳐지는 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방송에 잡히지 않을 때 커의 언행은 더 과격해진다. 커와 처음 맞대결을 펼친 장수연으로선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커의 ‘텃세’는 유명하다. 김효주가 신인일 때 신경질적으로 “빨리 해라”고 재촉한 일화도 유명하다. 장하나, 김세영 등 한국 선수들의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았고, 그린 위에서 엄격한 '군기반장'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초속 17m 이상 몰아친 텍사스의 강풍에 고전했던 박인비는 텍사스 슛아웃 최종 라운드에서 9오버파 80타로 부진했다. 세찬 바람 탓에 거리 조절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이고 커의 시간을 끄는 지연 플레이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강철멘털’과 ‘포커페이스’로 정평이 나있는 박인비일지라도 샷이 안 되는 날에는 동반자의 행동 하나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텍사스 슛아웃의 연장 세 번째 홀에서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됐다. 노무라 하루는 커의 행동에 어이없다는 미소를 짓는 장면이 포착됐다. 노무라와 커는 모두 네 번째 샷을 앞두고 있었다. 커가 세 번째 샷을 했고, 공은 그린 위로 올라갔다. 노무라는 그린 앞 짧은 러프에서 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는 노무라에게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말하며 퍼트 라인을 살폈다. 노무라는 커의 행동에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지었다.

육안상으로 둘의 공 위치와 핀까지의 거리는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커는 자신의 공의 위치가 더 멀다고 말하며 ‘선공’을 취했다. 정창기 전 KLPGA 경기위원장은 “핀에서 거리가 먼 선수가 의사 표시를 하는 건 정당한 요구”라고 설명했다. 분명 커의 행동은 룰 위반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무라가 거리상 큰 차이가 없는 러프에서 칩샷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에 커의 요구가 아니었다면 먼저 샷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다. 노무라는 이런 상황에서 주로 자신이 먼저 샷을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커의 행동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커의 ‘선공’에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먼저 자신이 퍼트를 홀컵 가까이에 붙인다면 상대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라는 퍼터가 아닌 웨지를 들고 홀을 겨냥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실수가 나올 수도 있었다. 커는 자신의 의도대로 퍼트를 홀에 잘 붙였다. 하지만 노무라 역시 칩샷을 홀 가까이 붙여 가볍게 파를 낚았다. 커의 심리전에 노무라가 말려들지 않은 셈이다. 이 상황뿐 아니라 커는 노무라와 연장전에서 누가 먼저 샷을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심리전을 이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커의 플레이를 영리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규정을 준수하며 충분히 자신의 시간을 활용한 뒤 샷을 하고, 승리를 위해 어떤 전략도 마다하지 않는 승부근성은 본받을 만도 하다. 물론 슬로 플레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커는 경험을 활용한 노련한 플레이로 최근 2개 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

‘싸움닭’ 기질의 지나친 승부근성은 분명 잡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미국 팀의 일원이었던 스테이시 루이스는 커의 독단적인 행동에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루이스는 커의 동반 플레이 제안에 거절의사를 분명히 했다. 동료들조차 커의 지나친 행동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싸움닭’으로 성장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21년 전 프로 전향을 하고 LPGA 무대에 입성한 커는 10대 선수였다. 당시에는 LPGA에 10대 선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커는 ‘천덕꾸러기’ 신세에 가까웠다. 선배들은 어린 커의 거친 입담을 받아주지 않고 핀잔을 줬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커는 더 독해졌다. 커는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 우승을 위해 집중할 뿐”이라고 말하는 등 ‘마이웨이’를 외치기도 했다. 20~30년 전 미국에서는 감정 표출을 권장하는 코치들이 많았다. 그래서 커의 과격한 언행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비신사적 매너 논란에도 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통산 19승을 획득한 그는 LPGA 명예의 전당 포인트 21점을 쌓았다. 앞으로 6점을 더해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다. 이미 40세지만 열정만큼은 10대 못지않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는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한계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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