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생애 첫승 올린 이대한이 캐디를 한 부친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1승했음을 알리고 있다 [사진=KPGA]
“열심히 노력하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나 같은 선수도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용기를 내길 바란다.”
지난 10일 제주도 서귀포시 사이프러스 골프&리조트에서 빗속에 열린 시즌 최종전 KPGA투어챔피언십(총상금 11억원) 4라운드에서 우승한 이대한(34)의 말이다. 공동 선두로 함께 경기한 올해 남자투어 최대어 장유빈이 송민혁과 함께 공동 2위(15언더파)였다.
2010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 데뷔한 이대한은 15년만이자 통산 134번째 대회에서 첫승을 달성했다. KPGA투어 비거리 순위 107위(277.66야드)인 이대한이 1위(311.35야드) 장유빈을 꺾은 건 골리앗을 꺾은 다윗같았다. 지난해까지 한 번도 상금 40위 이내에 들지 못했던 이대한은 이날 우승 상금 2억2천만원을 받고 상금 9위(4억2433만원)로 시즌을 마쳤다.
곽흥수 [사진=KPGA]
이대한은 굴곡 많은 투어 인생을 거쳤다. 스무살에 프로 데뷔했고 이듬해인 2011년 일본남자프로골프(JGTO)투어로 건너갔으나 성적이 부진했다. 국내에 복귀하지 못한 채로 국내보다 못한 중국 투어를 뛰기도 했다. 2018년 KPGA투어에 복귀했으나 대회 최고 순위는 지난 6월 KPGA선수권에서의 공동 2위였다.
KPGA투어 데뷔 후 첫승까지 15년 이상 걸린 프로는 이밖에 3명이 있다. 1973년 6월21일 투어프로가 된 ‘필드의 신사’라는 별명의 곽흥수는 15년11개월26일만인 1989년 6월17일 관악컨트리클럽(CC)에서 열린 일간스포츠포카리오픈에서 우승했다. 당시 악천후로 2라운드 36홀 경기로 마치게 됐는데 최윤수를 한 타 차로 제치고 데뷔 후 5,841일만에 우승했다.
1992년 6월 투어프로에 데뷔한 박부원은 2006년 5월 메리츠솔모로오픈에서 데뷔 15년만에 우승했다. 그는 우승 당시 10년째 당뇨병을 앓고 있었으며 2년 전부터는 증상이 악화되어 인슐린 주입기를 허리춤에 차고 시합을 다녔을 정도였다. 주말 라운드에서는 대체로 체력이 떨어지던 그의 우승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인간 승리였다.
박부원의 2006년 메리츠솔모로오픈 파이널 라운드 [사진=KPGA]
2000년 8월 데뷔한 박재범은 15년10개월만인 2015년6월 제2회 바이네르오픈에서 배윤호와의 연장전 끝에 첫승을 올렸다. 그는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하다 군에 입대했고 선수 생활 중에 척추측만증을 앓기도 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투어를 병행했고 2011년에는 일본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나 고국 투어에서의 우승은 110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달성했다.
리브(LIV)골프 선수 리처드 블랜드(잉글랜드)는 2001년 유러피언투어 데뷔 후 1, 2부 투어를 오가다 21년만인 2021년5월 벳프레드브리티시마스터스에서 무려 478경기만에 우승하며 감동을 전했다. 1부 투어에서 뛰기 위해 퀄리파잉은 6번을 보았다. 올해 51세인 그는 지난 5월 챔피언스 투어의 메이저인 시니어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여자 선수들은 어떨까? 한 해 출전하는 경기 수가 남자보다 많다. 대신 남자 선수들만큼 오랜 기간 투어 생활을 하지 않는다. 200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한 박주영이 지난해 10월1일 경기 파주 서원밸리CC에서 열린 대보하우스디오픈에서 데뷔 15년 만이자 279경기만에 우승했다. 엄마 골퍼로 33세에 첫승을 올려 큰 감동을 전했다.
엄마 골퍼 박주영이 아들 하율이를 안고서 우승을 만끽했다 [사진=KLPGA]
이밖에 KLPGA에서는 서연정이 260번째 대회, 안송이가 237번째, 최은우가 211번째, 곽보미가 205번째 대회만에 우승했으나 각각 9~11년의 경력으로 첫승을 올렸다. 해외에서는 남아공의 얘슐리 부하이가 지난 2022년8월 스코틀랜드 뮤어필드에서 열린 AIG여자오픈에서 데뷔 후 15년 만에 전인지와의 연장 승부 끝에 메이저에서 첫승을 올렸다.
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우승을 꿈꾸는 무관의 프로는 아직도 무수히 많다. 매년 프로테스트에만 수천명이 응시를 한다. 투어 프로가 되고나서도 출전권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대한의 우승 소감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분명 좋은 자극과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