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규정은 5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선두를 따라잡고 연장 끝 우승했다.
백규정(19.CJ)이 새로운 신데렐라가 됐다.
열아홉 신인 백규정은 19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 72골프장 오션코스에서 벌어진 미국 LPGA 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우승했다. 4라운드 5언더파, 최종합계 10언더파로 브리트니 린시컴, 전인지와 연장에 들어가 첫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냈다.
백규정은 LPGA 투어에 처음 참가했다. 그는 "이번 대회 목표가 LPGA 투어 선수들의 기량을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우승이었다. 그는 2006년 홍진주 이후 8년 만에 LPGA 투어에서 우승한 국내 투어 선수, 이른바 신데렐라가 됐다. 백규정은 우승상금 30만 달러와 LPGA투어로 가는 티켓을 잡았다.
사자는 하루에 20시간씩 잔다고 한다. 일어나서도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힘을 써야 할 때는 확실히 힘을 낸다. 온 힘을 쏟아 사냥감을 쫓아가 숨통을 조인다. 뛰어난 스포츠 스타들도 그렇다. 마이클 조던이 승부처에서 그러듯 중요한 순간이 오면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경기를 지배한다. 백규정이 그랬다.
백규정은 5언더파 공동 선두로 경기를 시작했지만 10번홀까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4번홀 버디, 6번홀 보기 하나를 하면서 제자리걸음만 했다. 마지막 라운드는 홀 위치가 쉬웠다. 바람도 별로 없어 다른 선수들은 점수를 많이 줄였다. 전인지, 박인비, 미셸 위 등 십여명의 선수가 백규정을 추월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따라가기가 버거겁다고 생각되는 순간 백규정이 발톱을 세웠다. 11번 홀에서 어프로치샷을 핀 바로 옆에 붙인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고는 거칠 것이 없이 달렸다. 15번홀까지 다섯홀 연속 버디였다.
결국 백규정과 전인지 린시컴은 10언더파로 연장에 진입했다. 백규정과 전인지가 유리한 점이 있었다. 백규정과 전인지는 나이는 적지만 연장 경험이 있고 거기서 이겼다.
린시컴은 체구가 크지만 연장 전적이 좋지 않다. 올해도 LPGA 챔피언십에서 경기 막판 선두를 빼앗기고 연장에 들어가 박인비에게 패했다.
그러나 린시컴은 이번 경기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았다. 백규정과 전인지는 버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린시컴은 평소보다 자신감이 있었다.
파 5인 18번 홀에서 치러진 연장전. 3억원이 넘는 우승 상금과 그 보다 더 큰 영광. 또 LPGA 투어 직행 티켓이 물가 넘어에 있었다.
전인지가 먼저 물러났다. 전인지는 세 번째 샷이 약간 짧고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물에 빠졌다. 린시컴은 자신감 있게 웨지를 휘둘렀다. 약 1.3m에 붙였다. 백규정은 1m 정도의 버디 기회를 잡았다.
같은 라인이었다. 린시컴은 오른쪽으로 놓쳤고 백규정은 넣었다. 내리막이었지만 백규정의 퍼트는 홀 가운데로 쏙 들어갔다. 백규정은 울지 않았다. 당연히 넣을 것을 넣었다는 표정의 당당함만이 보였다.
백규정은 “이렇게 많은 갤러리 속에서 우승해서 영광이다. 전반 경기가 잘 안됐지만 즐기면서 치려고 했다. 함께 경기한 인지 언니가 버디를 많이 하길래 나도 버디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잘 됐다”고 말했다.
경기 초반 우승자의 향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백규정 등 공동 선두 2명과 한 타 차 공동 3위는 9명이나 된다. 2타 차까지 합하면 15명, 3타 차까지는 18명이 있었다. 그 중에는 박인비를 비롯, 수잔 페테르센, 미셸 위, 리디아 고 등 강호들이 득실득실했다.
마지막 조가 9홀을 돌고 나서도 우승권에서 머물던 선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선두와 3타 차 이내에 18명이 남아 있었다. 이때 선두는 8언더파의 브리트니 린시컴과 전인지였다. 박인비도 상위권이었다. 3번 홀부터 3연속 버디를 잡았고 선두를 한 타 차로 쫓았다.
전인지는 11번 홀에서 핀 2m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9언더파 단독 선두로 도망갔다. 이때부터 선두권에 있던 선수들이 하나 둘씩 탈락했다. 미셸 위는 3타를 줄였지만 파 5인 13번 홀에서 약 2m 버디 퍼트를 넣지 못하면서 김이 상했다. 이 홀은 미셸 위같은 장타자의 놀이터같은 홀이다.
산드라 갈도 12번 홀에서 1.5m 파 퍼트를 넣지 못하는 바람에 우승권에서 탈락했다.
우승 경쟁자는 전인지-린시컴-박인비-페테르센-배희경으로 좁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5언더파로 선두와 4타 차이가 나던 백규정이 11, 12번 홀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서서히 좁혀왔고 선두를 따라잡았다.
영종도=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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