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강철 멘털의 비결로 타고난 성격과 절박함 2가지를 꼽았다. [하이커우=노건우 사진작가]
“이제 하산할 때가 됐다.”
박인비(27·KB금융)의 멘털 코치인 심리학박사 조수경(45)씨는 ‘제자’를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 2008년부터 정신 수양을 해온 박인비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심리 상담을 해줄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스님이 조용한 산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하는 명상을 박인비는 라운드를 돌면서 하는 수준이다.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골프에서 마인드 컨트롤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박인비는 지난 8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72홀 노보기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11일 중국 하이난 하이커우에서 만난 박인비는 “코스가 어려워서 노보기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긴장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떠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샷감각이 워낙 좋아서 자신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강철 멘털의 비결로 타고난 성격과 절박함을 꼽았다. 평소 무덤덤하고 단순한 성격의 박인비는 골프와 궁합이 잘 맞는 편이다. 또 주니어 시절부터 마인드 컨트롤이 안 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박인비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슬럼프에 빠졌다. 골프를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조수경 박사는 박인비에게 ‘무심하고 당당하게’라는 키워드를 던져줬다고 한다. 두 단어를 가슴에 새긴 박인비는 대회 마지막날 세계랭킹 1~3위가 맞대결을 펼치는 숨 막히는 승부 속에서도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인비는 “15번 홀이 끝난 뒤 ‘노보기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타 차였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드는데 3타 차여서 ‘이 순간을 즐기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박인비에겐 절실함도 있었다. 지난해 말 위암 재수술을 받은 할아버지 박병준(83)씨가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골프장을 찾아오자 그는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우승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박인비는 “온가족이 함께 쇼핑과 식사를 했다. 잡생각을 할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낸 것도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박인비는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부터 92홀 노보기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장기인 퍼트감만 회복하면 세계랭킹 1위 탈환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박인비는 12일 시작하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