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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골퍼' 김세영의 엉뚱함과 진지함

김두용 기자2016.06.21 오전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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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골프의 에이스로 떠오른 김세영은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여자골프의 에이스로 떠오른 김세영은 4차원 매력을 소유한 골퍼다.

김세영은 23세의 또래 친구들과 다른 점이 많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하지 않는다. 평소 그의 휴대전화기는 꺼져 있을 때가 많다. 그는 코스에 도착하면 골프만 생각한다. 하지만 연습이나 대회가 끝난 뒤 만나는 김세영은 유쾌하고 털털하다.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털어놓는다. 위트까지 가미된 답변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든다.

김세영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음악이 경기에는 해롭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 두 번째 대회인 코츠 챔피언십 때 이야기다. 그는 “경기 전 음악을 들으며 흥이 나서 춤을 추다가 담에 걸렸다. 당시 선두권에 있었는데 우천으로 경기가 지연되길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고 털어놓았다. 기도가 통한걸까? 1라운드를 2위로 끝낸 김세영은 2라운드에 앞서 우천으로 경기가 순연되면서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이처럼 김세영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엉뚱한 매력이 있다.

지난 20일 마이어 클래식에서는 우승 경쟁이 한참이었는데 느긋하게 캐디백에 걸쳐 앉아 손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12번 홀에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김세영은 갑자기 손가락을 움직이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렉시 톰슨(미국) 등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는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행동이었다.

‘태권 소녀’ 김세영은 태권도 동작을 보여달라고 주문하면 부상의 위험이 있음에도 서슴없이 화려한 돌려차기 시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했던 김세영은 공인 3단의 유단자다.

그러나 코스 안에서의 김세영은 평소와는 전혀 딴판이다. 아버지 김정일 씨는 “평소에는 산만한데 코스에서는 눈빛이 달라진다. 골프를 시키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아버지의 말처럼 골퍼 김세영은 진지하다. 자신의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새벽 별을 보면서 연습에 몰두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의 노력들이 롯데 챔피언십 연장전 샷 이글과 같은 '기적 같은 샷'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김세영 특유의 손 키스 세리머니가 나올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김세영의 롤 모델은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진출 꿈을 꾸면서 소렌스탐이 쓴 책들을 정독했다. ‘매 샷을 현실 같이, 현실을 연습 같이’라는 소렌스탐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김세영은 “‘매 샷에 집중하라’는 말만큼 와닿는 건 없었다. 소렌스탐이 여성이라는 한계를 두지 않고 정말 많은 희생과 노력을 하며 목표를 향해 정진한 것에 감명 받았다. 골퍼가 아닌 스포츠인으로 소렌스탐을 존경한다”고 설명했다.

소렌스탐이 세웠던 ‘비전 54’의 꿈을 김세영도 품고 있다. 그는 “골프를 하면서 54타를 쳐보고 싶다. 60타를 깨는 것도 어렵다고 하지만 도전할 수 없는 스코어는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JTBC 파운더스컵에서 김세영은 소렌스탐과 같은 27언더파 최저타 타이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한계 없이 계속 도전하고 싶다”며 자신의 목표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있다.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에게는 농담 섞인 말로 “기다려. 내가 가고 있어”라며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리디아 고의 어머니도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라고 평했다.

김세영은 LPGA 투어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유형이다. 샷에 자신이 있으면 언제든지 드라이버를 잡는다. 퍼트 스트로크도 너무 과감해 1m 이상의 파 퍼트를 남기거나 3퍼트로 보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김세영은 올 시즌 라운드 당 버디 4.42개로 이 부문에서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라운드 당 버디 수 2위는 4.11개의 노무라 하루(일본)지만 격차가 있다.

김세영은 꿈나무들에게 영향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이미 많은 주니어들이 김세영처럼 되고 싶어 하지만 본인은 아직까지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톱10을 항상 유지하다 우승도 하고 기복이 없어야 톱 선수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김세영은 성격이 모나지 않아 선수들과 두루 친하다. 손가락 부상 중인 박인비의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한 가운데 4차원의 소녀 김세영이 한국 여자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세영은 “꿈이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저는 그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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