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30cm 퍼트를 놓친 뒤 슬럼프에 빠졌던 김인경. 지난 해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우승했지만 식중독에 쓰러지고 꼬리뼈 부상에 신음했던 그는 8개월여 만에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이제 여유를 갖고 싶어요."
5일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스톡턴 시뷰호텔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숍라이트 클래식. 지난 해 10월 레인우드 클래식 이후 8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한 김인경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묻어났다.
김인경은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왔다. 2007년 투어에 데뷔한 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1승씩을 거뒀지만 2012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30cm 퍼트를 놓치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 해 10월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부활을 알린 것도 잠시. 또 다시 불운이 겹쳤다. 지난 해 말 생각지도 못했던 식중독 증세로 병원 신세를 진 뒤 연말에는 불의의 사고로 꼬리뼈를 다쳤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5개월 가까이 투어에 설 수 없었다. 김인경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로부터 '골프는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있으니 허허실실 즐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골프 때문에 너무 심각할 일도, 너무 나쁠 일도 없다. 그래서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인경과의 전화 인터뷰.
최종일, 강풍 속에서의 플레이는 어땠나?
"경기를 앞두고 '포기의 축복'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내가 우승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도 최고가 아닐 때도 있지만 이번 주에는 우승을 해서 너무 기쁘다. 재미있게 치자고 생각했는데 웃을 수 있게 됐다."
식중독 증세로 한참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지난 해 11월 멕시코에서 열린 로레나오초아 인비테이셔널을 앞두고 식중독에 심하게 걸려 입원을 할 정도였다.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아직도 장거리 비행이나 시차가 많은 곳에 다니는 것은 힘들다. 집중력에 문제가 생겼었다."
4월 이후 한 달여 간 투어 활동을 중단한 이유는?
"3월에 시즌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시합 준비와 재활을 서두르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내가 원하는 경기가 잘 되지 않다보니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6월 이후에 중요한 메이저 대회들을 염두에 두고 재활 시간을 더 길게 갖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싶었다."
부상당한 꼬리뼈 상태는?
"지난 해 12월에 봉사를 갔다가 넘어져서 꼬리뼈와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처음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진단을 받았다. 일상 생활을 하는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운동을 해야 하다보니 힘든 점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빨리 부상에서 회복됐고, 재활 훈련을 하면서 상체 근력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부상을 당하면서 몸 관리의 중요성을 더 깨닫게 됐다. 아픈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캐디를 새로 구했는데.
"절친한 투어 동료인 카린 이셰르에게 소개받았다. 악셀 배탕이라는 프랑스 사람인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캐디 활동을 해왔다. 악셀의 아내도 현재 유럽에서 활동 중인 골퍼다. 첫 대회부터 우승을 해서 좋은 징조같다."
최종일의 퍼트는 인상적이었다.
"퍼트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이 있었다.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짧은 퍼트를 놓친 뒤 퍼트에 대한 재미를 잃었다. 샷은 재미있었지만 퍼트는 누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반드시 넣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서 더 잘 안 됐던 것 같다. 이제는 결과를 생각하기 보다는 본대로 치려고 한다."
그린 주변에서 유틸리티로 퍼트를 했는데.
"올해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플레이를 보고 연습을 해왔다. 그린 주변 라이가 좋지 않고 어프로치 샷을 하기가 어려울 때 유틸리티 클럽으로 공을 굴리는 게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번 대회에서 효과를 많이 봤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아버지로부터 '골프는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있으니 허허실실 즐기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사실 골프 때문에 너무 심각할 일도, 너무 나쁠 일도 없다. 그래서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즐기는 취미 활동은?
"사는 게 취미다. 짬이 날 때마다 기타와 피아노를 치고 언어를 배우는 생활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에 놀러가서 양궁과 펜싱을 접하기도 했다."
카카오톡에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라는 문구를 적어놨는데.
"골프를 빼고 내게 남는 건 가족과 친구다. 가족과 친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안정적으로 골프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큰 위안을 받는다."
올해 목표는?
"매년 조금 더 발전했으면 좋겠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지난 몇 년 동안 마음의 여유없이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사람들하고 소통하면 좋겠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