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US여자오픈 기간동안 머문 VIP텐트 [사진 김두용]
제72회 US여자오픈은 미국 대통령이 코스를 찾은 최초의 대회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남자 US오픈에는 지금껏 두 차례 대통령의 방문이 있었지만 여자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대회 개최가 결정된 뒤부터 US여자오픈은 계속 화제가 됐다. 개최지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는 정치고 골프는 골프다’는 논리에 따라 개최지가 변경되진 않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영향도 컸다.
이번 대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라운드부터 3일간 코스에 머물면서 다양한 이슈를 낳았다. 우선 최대 골프 축제인 US여자오픈에 미국 대통령이 자리했다는 사실이 역사 그 자체였다. 한국 팬들은 박성현의 우승을 기억하겠지만 미국 팬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대회라는 데 의미를 둘 것이다.
선수들은 정치와는 관계없이 대체로 영광이라고 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인 크리스트 커와 스테이시 루이스(이상 미국)는 “대통령이 왔다는 자체가 골프를 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허미정과 이미향 등도 “일단 그 나라의 대통령이 골프 대회를 관전한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림은 “여긴 US여자오픈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주인공이 되는 건 좀 아니지 않냐”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설명 : 보안 강화로 선수들의 캐디백까지 검사하는 모습 [사진 김두용]
대통령의 등장으로 대회장 분위기는 무거웠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VIP 텐트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스나이퍼들도 곳곳에 배치됐다. 폭발물 감식견도 코스 곳곳을 돌아다녔다.
김세영은 “처음에 개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라며 진저리를 쳤다. 심지어 선수들의 캐디백까지 철저히 검사했다.
코스의 안팎도 소란스러웠다. 방탄유리가 설치된 특수 텐트에서 경기를 관전한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는 사람이 몰렸다. TV 카메라와 사진기자는 물론이고 갤러리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모였다. 경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에 시선이 고정된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트럼프 지지를 상징하는 빨간색 모자를 흔들며 해바라기처럼 대통령을 바라봤다.
코스 밖에서는 시위가 벌어졌다. 여성 단체들은 “트럼프를 버려라”는 셔츠를 입고 여성 비하 발언 등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대통령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같은 소란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코스 인근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묵었다. 특수 텐트에서는 크리스티 커, 앨리슨 리 등 많은 미국 선수들이 트럼프와 만나는 장면도 포착됐다. 3라운드가 끝난 뒤에는 일부 선수들과 만찬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회 중 트위터를 통해 한국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50년 만에 아마추어 우승을 노렸던 최혜진에 대해 “몇십년 만에 아마추어 선수가 공동 선두에 올라 있다. 매우 흥미롭다”고 적었다. 또 박성현의 우승이 결정되자 “2017 US여자오픈 우승을 축하한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경기를 마치고 스코어카드를 제출하러 가는 박성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시상식장에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상식이 다 끝난 오후 7시가 넘어서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만약 미국 선수가 우승을 했다면 3일간 대회장에 머물렀던 트럼프가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베드민스터(미 뉴저지)=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