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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US여자오픈서 한일 골프 역전

남화영 기자2024.06.05 오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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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노 히나코는 131계단 상승한 61위가 됐다 [사진=USGA]

이틀 전에 마친 세계 최대 메이저 제79회 US여자오픈에서 일본 선수들이 약진했고 한국 선수들은 1998년 이래 26년만에 최악에 가까운 성적표를 냈다.

사소 유카가 이번에는 일본 국적을 달고 3년 만에 우승하면서 일본의 첫 US여자오픈 타이틀을 안겼다. 4일 발표된 세계 여자골프랭킹에 따르면 사소는 30위에서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메이저 우승으로 무려 100포인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많은 시부노 히나코는 이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포인트 60점을 받아 세계 랭킹은 192위에서 61위로 131계단이나 뛰어올랐다. 그리고 톱10에만 일본 선수가 5명이나 차지하면서 올림픽에 3명까지 나갈 기대감도 살아났다.

아야카 후루에는 공동 6위로 마쳐 18포인트를 받아 25위에서 22위가 됐다. 현재 페이스라면 세계 15위까지는 최대 4명까지 무조건 출전 가능한 혜택을 받고 후루에까지도 올림픽 출전을 노려볼 만하다.

사소 유카는 일본인으로 첫 US여자오픈 우승자가 됐다. [사진=USGA]

올 시즌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3승을 달리는 일본 메르세데스 대상 랭킹 선두 리오 다케다는 이번 대회 공동 9위로 14포인트를 받아 45위에서 40위로 올랐다. 역시 J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코이와이 사쿠라도 9위를 해서 14포인트를 받아 51위에서 47위가 됐다.

김효주, 임진희와 함께 공동 12위로 마친 야마시타 미유는 10.62포인트를 받아 25위가 됐다. 지난해 JLPGA 대상, 상금왕을 차지한 미유는 자국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도 불구하고 LPGA투어 메이저 셰브론챔피언십에 출전해 공동 17위로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LPGA의 메르세데스 랭킹도 7.25포인트를 받아 대상 후보 4위에 올라 있다.

JLPGA투어에서는 랭킹 상위권의 선수 대다수가 US여자오픈에 출전했다. 수년전부터 투어의 국제화를 추진중인 협회의 노력 덕에 가능했다. LPGA투어에서 성공적인 투어 생활을 했던 고바야시 히로미 JLPGA투어 회장부터 선수의 해외 큰 대회 출전을 장려했다. 그래서 자국 투어 선수가 메이저에서 우승하면 파격적으로 자국 대회 우승 포인트의 4배를 준다.

J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신지애가 지난해 일본 대회들은 상당수 포기하면서 메이저 대회를 누비면서 좋은 성적을 낸 결과 시즌 막판까지 JLPGA 대상포인트 우승 경쟁을 했다. 해외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 가산점을 주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그래서 올해는 이 대회에 21명이나 출전했다. 일본 최종 예선전에서도 5명이나 나갔다.

지난해 KLPGA 다승자 임진희가 US여자오픈서 공동 12위를 했다. [사진=USGA]

국내 상황은 정반대다. 1998년 박세리가 드라마틱하게 우승한 이래로 US여자오픈에서 한국은 2020년까지 11승이나 거뒀다. 2017년은 톱10에 8명이나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한국은 유독 이 메이저 대회에서 강세였다.

하지만 올해 한국은 톱10에 아무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효주와 임진희가 공동 12위를 기록한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다. 출전 선수들부터 일본보다 한 명 적었다. 역대 최저인 20명이 나가 14명이 컷을 통과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는 단 3명만 나갔다. 세계 랭킹으로는 75위까지 나갈 수 있지만 그들은 국내 대회에 나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선수가 줄었던 2021년과 같은 숫자다.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9년간 열던 한국 예선전을 지난해부터 중단했다. 예선전의 모든 경비를 지불하던 USGA가 보기에 상위 프로들은 안 나오고 아마추어나 상비군이 신청하고 간신히 출전자를 맞추는 상황이었으니 그만둘 법도 했다.

KLPGA의 국내 선수들을 해외에 내보내지 않기 위한 이른바 ‘쇄국정책’ 때문이다. ‘세계 넘버원’이나 글로벌 투어를 표방하는 KLPGA는 공식적으로 ‘쇄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 협회에서 낸 사업계획서를 보면 인기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위협 요소’라고 판단하고 있다.

KLPGA의 2024 사업계획서

KLPGA의 현황 분석에서 협회의 강점(strength)은 ‘스타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등장 및 이슈 생산’을 들었고, 위협(Threat)으로 ‘국내 스타 플레이어의 해외 진출’을 들었다. 그래서 해외 메이저에서 우승을 해도 대상포인트에 전혀 반영하지도 않는다. 그 기간에 KLPGA대회를 빠진 것에 대한 벌칙인 셈이다.

인기 있는 몇몇 선수들을 소모품처럼 쓰는 것도 문제다. 인기 높은 선수는 갤러리를 불러들이며 스폰서를 끌어들여야 하는 KLPGA 투어 발전의 자원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심각한 룰 위반 행위로 벌을 받은 윤이나를 1년반만에 서둘러 풀어준 뒤에 첫 출전한 대회에서 장타조에 넣어 흥행 카드로 썼다.

한국과 일본 두 여자 협회의 자세가 이렇게 반대이다보니 한일이 해외 큰 무대에서 역전된 상황은 US여자오픈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으로 남은 해외 메이저나 대회에서 일본이나 태국 선수들은 더 많이 출전할 것이고 세계 랭킹을 올릴 것이다.

지난주 sh수협MBN레이디스오픈에서 우승한 이예원은 세계랭킹에서 US여자오픈의 6~9위 중간에 해당하는 16.5포인트를 받고 4계단 오른 27위가 됐다. 최근 출전한 대회에서 3, 1, 2, 1위를 한 선수의 랭킹이 35위에서 고작 이 정도 상승하는 데 그쳤다. 국제 무대에서의 랭킹 배분은 그만큼 냉정하다.

한국 일본 선수들 세계 랭킹 비교 [자료=WWGR]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LPGA투어 토토재팬클래식에서 우승한 인기 선수 이나미 모네가 자국 무대를 떠나 올해 LPGA투어 루키로 활동하고 있다. 고바야시 JLPGA 회장은 시즌초에 “일본 선수들은 토토재팬클래식에서 우승해 LPGA투어 시드를 따겠다는 목표로 해외 진출을 꿈꾼다”고 말했다.

한국은 반대다. KLPGA는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 열리는 LPGA투어 대회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을 비공인 대회로 규정하면서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억대의 벌금을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같은 기간 국내 대회를 열고 있다. 결국 해외 투어 진출을 꿈꾸던 선수던 선수들은 그 기간에 미국에서 열린 퀄리파잉 시리즈 대회에 나가야 했다.

어떤 투어와 대회 출전을 선택할지는 선수들의 자유 의사다. 하지만 선수들이 활동할 무대를 만들고 더 크게 성장할 환경을 만드는 건 협회의 몫이다. 뛰어난 선수의 해외 진출을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를 비공인으로 규정하는 게 협회라면 이를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비판한들 무슨 큰 잘못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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