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는 특유의 무한 열정을 미국 무대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고성진 사진작가]
다부진 체격에 길고 깊은 눈매가 매섭다. 그래서 첫 인상이 강렬하다. 통쾌한 장타와 화려한 퍼포먼스, 통통 튀는 세리머니는 계속해서 시선을 빼앗는다. 불같은 성미라 화를 분출하는 것도 남들보다 격하다. ‘에너자이저’ 장하나의 매력들이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도 그의 강한 인상 탓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한 번 접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무한 열정과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장하나는 자신만의 색깔로 LPGA 투어 정복에 나섰다.
#골프계의 ‘레이디 가가’
LPGA 투어 신인 장하나는 이방인이다. 자유분방하고 꾸밈없는 화끈한 스타일이 더 이방인처럼 보이게 한다. 장하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처럼 액션이 크고 화려하다. 오버액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성적이 좋으면 눈길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올해 LPGA 정회원이 된 장하나의 데뷔전도 그의 색깔만큼이나 강렬했다. 개막전 코츠 챔피언십에서 월요 예선을 통해 본선에 올랐고, 우승 경쟁을 펼쳤다. 2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로 뛰어오른 뒤 2000년 스테이트 팜 클래식 우승자 로렐 킨 이후 월요 예선 통과자로는 15년 만에 우승컵을 넘봤다.
데뷔전 최종 결과는 최나연에 1타 차 뒤진 공동 2위. 신인으로서 최고의 스타트였다. 장하나는 “첫 경기를 굉장히 잘 풀어서 만족스러웠다. 스타트가 좋았기 때문에 목표로 잡은 3승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세 번째 대회인 ISPS 호주여자오픈에서도 우승 경쟁을 했다. 하지만 잘 나가다가 3라운드에서 욱하며 삐끗했다. 12번 홀(파4)에서 티샷이 우측으로 밀리면서 숲에 들어갔고, 세컨드 샷도 두껍게 맞으면서 얼마 나가지 못했다. 반드시 그린에 올려야 했던 세 번째 샷은 왼쪽으로 휘며 벙커에 빠지자 골프채를 집어 던지며 폭발했다. 평정심을 잃은 장하나는 결국 다섯 번 만에 볼을 그린에 올렸고, 2퍼트로 트리플 보기를 적었다. 순식간에 3타를 잃은 장하나는 선두 경쟁에서 밀려 났다. 장하나의 다혈질적인 면이 단적으로 드러난 상황이었다. 장하나는 “그 순간만큼은 저만의 공간에 있기 때문에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멘털이 붕괴됐다”라고 설명했다.
“더 침착했더라면 잘 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밀려 왔지만 장하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했다. 그는 “선수는 한 번 빠지면 오로지 그 순간만 집중하는 승부사 기질 같은 게 있어야 한다. 또 결과적으로 이런 아쉬움이 없다면 발전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하나는 가수 레이디 가가를 좋아한다.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의상으로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은 레이디 가가처럼 장하나는 평범함을 거부한다. 그는 “성격상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쓴다. 골프는 신사적인 스포츠라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엄숙한 편이다. 거기에 선수까지 조용하다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세리머니와 오버액션 등으로 대회장에 찾아온 갤러리에게 재미를 줘야 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특별한 첫 승 세리머니도 이미 준비했다고 한다. 국내 투어에서 말춤과 시건방춤 등 색다른 퍼포먼스로 주목을 끈 장하나는 LPGA 투어 첫 승 세리머니도 얌전하게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장하나는 “남들과 다른 세리머니를 보여줄 것이다.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나올 세리머니를 기대해 달라”고 씩 웃었다.
#신인상 경쟁 ‘장갑 벗어봐야’
장하나는 어릴 적부터 승부욕이 남달랐다. 경쟁에서 지는 것을 싫어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했던 아버지, 농구 선수 출신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타고난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초등학교 때 검도를 배웠던 장하나는 주로 자신보다 덩치가 컸던 오빠들과 경쟁하며 승부욕을 키웠다. 장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주로 중·고등학교 오빠들과 대련을 했다. 게임이 되지 않는 승부였는데 지기 싫어서 죽기 살기로 버텼던 기억이 난다. 대련에서 지면 울기도 많이 울었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주로 남자애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던 터라 식성도 대단했다. 365일 삼시세끼 고기를 먹는 ‘육식 마니아’다. 장하나는 “소고기, 돼지, 닭고기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 고기는 다 좋아한다. 또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타고난 통뼈에 남다른 식성 덕분에 지금까지 크게 아팠던 적도 없다고 한다. 육식 선호로 다져진 스태미나는 호쾌한 장타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타고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장하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했다. 될 성 부른 떡잎이었던 장하나의 도전들은 한국의 최연소 신기록들로 마구 채워졌다. 장하나는 2004년 반원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해 쟁쟁한 언니들과 겨뤄 50위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대원중 시절인 2007년에는 한국 선수 최연소로 US여자오픈 본선에 진출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미국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기량을 닦았고, 2007년 US여자아마추어 대회에서 4강에 오르기도 했다.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 전향을 한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2012년 1부 투어에서 뛰기 시작했는데 첫 해부터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3년에는 상금왕과 대상을 수상하며 KLPGA 투어의 여왕에 등극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LPGA 투어에서는 처음으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절친 김세영이 벌써 2승을 챙기며 세계무대에서 한 발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장하나는 친구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경쟁했던 사이라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어 편안한 라이벌 관계”라고 말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자존심이 강한 장하나는 이를 갈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승부는 알 수 없다”며 신인상 경쟁에 대한 강한 의욕을 피력했다.
장하나는 김세영, 김효주 등과 생애 한 번뿐인 신인상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투어에서도 유일하게 갖지 못했던 타이틀이기에 욕심이 난다. 즐거운 마음으로 라이벌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신인상 타이틀도 거머쥐겠다는 심산이다. 그는 “라이벌이 있고, 뉴 페이스가 등장하는 일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골프시장이 커지고 팬들의 집중도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수로서 라이벌이 있고, 그 사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