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앨리슨 리와 켈리 손은 가치관과 스타일이 180도 다르다.
한 명은 프로 골퍼지만 학교가 해방구라 했고, 다른 한 명은 공부에 열중하다 투어 프로를 택했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한국계 돌풍에 동참한 앨리슨 리와 켈리 손의 이야기다. 앨리슨 리는 학업과 투어 프로 생활을 병행하며 삶의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아이비리그의 명문 프린스턴대 출신의 모범생 켈리 손은 쉬운 길을 두고 힘겨운 ‘떠돌이’ 삶을 살고 있다. 재미교포인 둘은 생김새만큼이나 가치관과 스타일도 180도 다르다.
‘제 2의 미셸 위’, ‘프린스턴대 출신 1호’
이목구비가 뚜렷한 앨리슨은 서구적인 외모와 몸매를 지녔다. 반면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에 똑 부러지는 말투의 켈리는 동양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켈리는 뉴욕에서 자랐고, 앨리슨은 LA 출신이다. 성장한 환경부터 동부와 서부로 떨어졌지만 둘은 주니어 골프 대회와 교포 사회 내에 자주 만났다고 한다. 켈리가 3살 더 많은 언니지만 교포 사회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켈리는 “13살 꼬맹이 때부터 앨리슨을 봐왔다. 당시에는 엄청 작았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컸다”라고 웃었다. 175cm인 앨리슨은 켈리보다 10cm가 더 크다.
둘은 LPGA 투어 데뷔 전부터 화려한 이력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4 미국대학 최고 여성 골퍼에게 수여되는 안니카상을 수상한 앨리슨은 미국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을 끈 유망주다. 2015 LPGA 투어 Q스쿨에 참가했지만 만약 통과하지 못했다면 프로 전향을 내년으로 미룰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호주교포 이민지와 함께 당당히 공동수석으로 투어 카드를 따냈다.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미소와 외모 그리고 실력까지 겸해 ‘제2의 미셸 위’로도 불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앨리슨은 “아직 미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제가 어릴 때부터 미셸을 존경하고 닮고 싶어 했지만 가야할 길이 멀다. 내년에 기량을 갈고 닦아서 비교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하길 바랄 뿐”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제2의 미셸 위’로 불리는 건은 영광이고, 사람들의 시선에도 큰 부담감은 없다고 한다.
켈리는 미국 동부의 명문 프린스턴대 출신의 1호 LPGA 투어 선수다. 외과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이민 온 켈리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한 수재였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왜 프로 골퍼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주위의 ‘불만’이 나왔을 정도다. 켈리는 “대학에 가서 오히려 공부가 더 좋아졌다. 그래서 지난 4년 동안 공부가 주가 됐고, 골프는 해방구였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골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멘토들의 조언들로 인해 켈리는 결국 프로 골퍼의 꿈을 먼저 펼쳐보기로 결정했다.
골프 아닌 제 2의 인생 설계
미셸 위가 그랬던 것처럼 둘은 학업과 골프라는 ‘투잡’을 선택했다. 물론 켈리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여유가 생기면 투어 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사업에 대한 구상도 할 계획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켈리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에서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하고 싶어 한다. 켈리는 “비영리단체에서 자선활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사회공헌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골프를 얼마 동안 더 할 것인지는 정해놓지 않았다. 하고 싶을 때까지 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학생인 앨리슨은 아직 뚜렷한 진로는 정하진 않았다. 앨리슨은 UCLA에서 정치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우선 대학 졸업이 우선이라 투어와 학업을 병행한 미셸 위에게 틈틈이 조언을 받고 있다. 앨리슨은 “미셸 위에게 골프와 학업을 밸런스있게 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클래스 스케줄을 어떻게 짜야 하고, 몇 개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알려줬다”고 말했다. 앨리슨은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각 3개 클래스 총 6개 과목을 들으며 3학년 과정을 이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앨리슨은 대학 공부가 향후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올해 아시안스윙에 3~4개 대회만 참가할 예정인 앨리슨은 “내 인생의 전부가 골프가 되는 건 원치 않는다. 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 가지 않을 거라고들 얘기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내 삶을 위해서 대학을 선택했다. 졸업까지 3~4년을 잡고 있다. 지금까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골프를 해왔으니 은퇴 뒤에는 골프와 관련된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라고 털어놓았다.
둘은 코치 없이 투어 생활을 버텨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빼어난 기량을 가진 루키들이 많이 들어왔고, 순조롭게 적응하는 선수들이 많아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켈리는 “루키들에게 변명이 통하지 않는 그런 시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신인들이 너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라고 평가했다. 앨리슨도 “매 번 다른 코스에서 경기를 하고 사람들의 집중도도 높다. 대학골프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프로 대회는 4일 내내 잘 치고 준비가 잘 된 선수만이 우승할 수 있다. 특히 메이저 대회는 갤러리도 많고 분위기가 달라 더욱 신이 나고 기다려 진다”라고 말했다.
설렘 가득한 표정의 신인 켈리와 앨리슨. 앞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날 그녀들의 인생이 있기에 푸른 잔디처럼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