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거리에서 쭈타누깐에 필적할 유일한 여성 선수는 젊은 시절 로라 데이비스라고 캐디는 봤다.
때론 2번 아이언으로 300야드를 치기도 하는 에리야 쭈타누깐의 진짜 샷 거리가 궁금했다. 7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의 의류업체인 JDX와 스폰서 계약을 추진 중이었다. 그 회사 관계자들과 프로암을 했다.
이 조를 따라다니면서 쭈타누깐의 거리를 직접 쟀다. 쭈타누깐은 성격이 좋다. 특별히 친한 한국 선수는 없다고 하는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똑바로” 등 간단한 한국말을 잘 했다.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했다.
쭈타누깐은 당시 새로운 캐디와 일을 시작했다. 영국 출신으로 남자 투어인 유러피언투어에서 일하다가 LPGA 투어 선수 몇몇의 가방을 멘 피터 곳프리였다. 새 캐디도 쭈타누깐의 정확한 거리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재면서 기자에게도 정보를 알려줬다.
연습라운드에도 쭈타누깐은 드라이버를 안 가져왔다. 쭈타누깐은 “드라이버를 치면 똑바로 안 갈 때도 많고, 똑바로 간다 해도 거리 조절이 잘 안 된다. 생각보다 너무 멀리 가서 러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 안 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알려진대로 쭈타누깐의 주무기는 3번 우드다. 그는 “3번 우드 캐리 거리가 250야드이고 거기에 런을 더해야 한다”고 말했다. 런은 페어웨이의 단단한 정도, 경사 등에 따라 달라진다. 쭈타누깐의 탄도는 약간 낮은 편이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런이 많다.
인터내셔널 크라운이 열린 메리트 골프장 1번홀(431야드, 파 4)에서 다른 선수들은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고 두 번째 샷을 5번 아이언 정도를 썼다. 쭈타누깐은 3번 우드로 티샷을 하고 피칭 웨지로 그린에 올렸다. 쭈타누깐이 3번 우드로 다른 선수 드라이버보다 60야드를 더 보낸 것은 아니었다. 도그레그 홀을 질러 쳐서 차이가 벌어졌다.
약간 내리막이며 뒷바람이 불던 8번 홀(파 5)에선 우드 티샷이 직선 거리로 320야드 나갔다. 캐디 곳프리는 “파 5홀 같은 곳에서 필요하면 좀 세게 때린다. 3번 우드로 300야드 가까이 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홀에서 쭈타누깐은 160야드를 남기고 9번 아이언으로 2온에 성공했다. 오르막 490야드 파 5인 16번 홀에서는 8번 아이언으로 2온했다.
미들 아이언 거리는 놀랄만한 정도는 아니다. 7번 아이언 캐리 거리가 165야드다. 티나 페어웨이에서 치면 스핀이 걸리기 때문에 165야드, 러프에서 치면 런을 감안해 180야드 정도를 보고 쳤다. 2번 아이언은 캐리 거리 230야드, 3번 아이언은 220야드를 보고 있다.
경사, 바람 등의 변수를 제외하면 쭈타누깐은 3번 우드로 런 포함 평균 285야드 정도를 쳤다. 3번 우드나 2번 아이언의 방향이 상당히 정교해 도그레그를 공격적으로 질러 치기 때문에 경쟁자들과의 차이는 실제 거리 차보다 컸다.
곳프리는 “예전 로라 데이비스가 요즘 용품으로 쳤다면 혹시 모를까 쭈타누깐처럼 거리가 많이 나는 여성 선수는 없다. 렉시 톰슨이 멀리 치지만 드라이버로, 또 드로 구질로 치는데도 쭈타누깐의 3번 우드와 거리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어떨까. 곳프리는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LPGA대 KLPGA의 ING생명 챔피언스 트로피에서 박희영의 가방을 메고 박성현의 경기를 봤다. 아주 멀리 친다. 공을 매우 높이 띄우는 스타일이어서 뒷바람이 불면 아주 멀리 날아가기도 하는데 평균 런 포함 275야드 정도 칠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 선수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곳프리는 “남자 투어 선수 중에서도 중위권은 된다”고 말했다. 골프용품사 핑에 따르면 PGA 투어선수들의 평균 드라이버 캐리 거리는 270야드, KPGA 투어 선수들의 평균 캐리 거리는 265야드 정도다. 쭈타누깐의 3번 우드와 15~20야드 차이다. 쭈타누깐의 샷은 탄도가 낮아 런이 많기 때문에 차이는 좀 줄 것이다. 쭈타누깐이 드라이버를 (똑바로) 친다면 남자 평균을 약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300야드 벽을 넘길 것이다.
곳프리는 쭈타누깐의 장타 비결에 대해 “다운스윙시 손목 코킹을 오히려 더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그런 코킹으로 거리를 낸다. 타이밍 맞추기가 매우 어렵지만 거리는 더 난다. 또 쭈타누깐은 완벽한 체중이동을 하고, 임팩트 때 있는 힘껏 때린다.
올 4월까지만 해도 한 번도 우승을 못한 에리야 쭈타누깐은 4개월 사이에 여자 골프의 거인이 됐다. 최근 10경기에서 5승을 했다. 여자 골프의 거인이 잠을 깼다. 메이저 챔피언으로 등극하면서 마지막 라운드에서 무너지던 상처를 씻었다.
특히 지난 주 캐나다에서의 우승은 의미가 있다. 랭킹 1위 리디아 고가 최근 4번 중 3번 우승한 대회다. 랭킹 3위 브룩 헨더슨의 홈이기도 하다. 리디아 고와 헨더슨의 영토에서 쭈타누깐은 경쟁자 두 명을 완벽히 제압했다.
또 역전의 여왕 김세영이 마지막 라운드 15번 홀까지 버디 6개를 잡으면서 몰아붙였는데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 골프채널은 세계랭킹 2위로 올라선 쭈타누깐이 리디아 고를 넘어 1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썼다. 이 분석처럼 쭈타누깐이 리디아 고를 넘을지는 알수 없으나 양강체제를 만든 건 확실하다.
쭈타누깐의 강력한 스윙은 왼쪽 무릎에 큰 압력을 가한다. 쭈타누깐은 올림픽에서 기권했고 캐나디언 오픈에서 테이핑을 한 채 경기했다. [게티이미지]
문제는 무릎이다. 그는 올림픽 중 무릎이 아파 기권했다. 캐나디언 오픈에는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나왔다.
장타를 치는 선수들은 무릎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타이거 우즈도 미셸 위도 무릎이 아팠다. 부상 보다 더 큰 문제는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조급하게 대회에 참가했다가 재발해 고질병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수가 타이거 우즈다.
쭈타누깐의 에이전트에 의하면 무릎에 큰 이상은 없다고 한다. 이제 스물 한 살이니 회복이 빠를 것이다. 그래도 워낙 공을 세게 때리는 선수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강속구투수가 어깨와 팔꿈치 부상이 잦은 것처럼 골프 장타자에게 무릎은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2013년 박인비가 메이저 3연승을 할 때 스테이시 루이스는 “인비의 퍼트가 여자 골프의 판도를 정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자골프의 판도 변수 중 하나는 쭈타누깐의 무릎이 될 수도 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