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뉴스

국내 여자 골프 향상 이끈 LPGA 한국 대회

김지한 기자2022.10.17 오전 9:48

폰트축소 폰트확대

뉴스이미지

지난 2019년 열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환호하는 장하나.

그동안 한국에서 개최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는 22개다. 1995년 삼성 월드 챔피언십 여자 골프 대회가 처음 열린 뒤, CJ 나인브릿지 클래식,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등을 거쳐 2019년부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이 치러지고 있다. 대회를 후원한 기업에 따라 대회 명칭이 달라졌고, 골프장도 바뀌었다. 그러나 선수들의 플레이와 대회에 대한 관심도가 웬만한 메이저급 대회 수준으로 높았던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삼성 월드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했던 골퍼는 여자 골프의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선수는 고진영이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대회 역사를 돌아보면, 1990년대 이후 여자 골프에서 한 시대를 평정한 골퍼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한다. 특히 한국 선수들에겐 한국에서 열린 LPGA 대회가 새로운 기회의 장이었다. LPGA 비회원 선수가 우승하면 LPGA 투어에 곧장 진출할 수 있는 카드가 주어지는 규정 덕분이었다. 2017년 10월, 인천 스카이72 오션 코스에서 열린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고진영은 이듬해 LPGA 투어에 진출해 세계 톱 랭커가 됐다. 고진영은 “골퍼 인생에서 가장 뜻깊었던 우승이었다. 그 우승이 없었다면 미국 무대에 도전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국 개최 LPGA 대회의 시작,
삼성 월드 챔피언십

1995년 10월 12일. 한국에서 처음 LPGA 투어 대회가 시작한 날이다. 당시 조성된 골프 붐을 타고, 삼성그룹이 5년 동안 세계 최대 매니지먼트사 IMG와 손잡고 LPGA 투어 대회 후원을 결정하면서 국내에서 삼성 월드 챔피언십 여자 골프 대회가 열렸다. 대회 장소는 제주 파라다이스 골프클럽(현 캐슬렉스 제주)이었다. 당시 개장 6개월 만에 LPGA 투어 대회를 유치해 준비부터 개최까지 많은 공을 들였다.

대회 수준이 높았다. 대회 총 상금 규모만 47만5000 달러였다. 당시 한국에서 열렸던 골프 대회 중에 최다 상금이 걸렸다. 16명만 나선 출전 선수 면면도 화려했다. 1995년 당시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둔 안니카 소렌스탐, LPGA 투어 개인 통산 30승을 채웠던 베시 킹(미국), 전년도(1994년) 상금왕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 등이 출전했다. 한국에선 주최국 출전 쿼터 1장이 주어져 당시 국내 랭킹 1위였던 이오순이 이 대회에 나섰다.

첫 대회에선 소렌스탐이 정상에 올랐다. 사흘 연속 선두를 달리던 데이비스와 서든데스 연장을 치러 역전 우승했다. 파5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 첫 홀에서 홀과 10m 거리에서 시도한 칩샷이 그대로 들어가 버디로 연결시키고 환호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덕에 소렌스탐은 상금왕, 올해의 선수, 최저타수상 등 개인 타이틀 3관왕을 굳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듬해 10월, 경기 포천 일동 레이크 골프 클럽으로 옮겨 열린 삼성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소렌스탐이 정상에 올라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전 세계 여자 골프계에 깊이 각인시킨 한국 골퍼가 있었다. 그해 6월 프로에 데뷔한 박세리였다. 당시 박세리는 국내 투어 3주 연속 우승, 여자 선수 최초 한 시즌 상금 2억원 돌파 등의 기록을 세워 국내 여자 골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삼성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박세리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소렌스탐, 준우승자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과 막판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고, 소렌스탐에 3타 뒤진 3위에 올랐다. 대회가 끝나고서 눈물을 흘린 박세리는 이 대회를 통해 미국 진출 의욕을 강하게 키웠다.

1997년 경기 용인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세 번째 삼성 월드 챔피언십에선 줄리 잉스터(미국)가 헬렌 알프레드손, 켈리 로빈스(미국)와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다. 이 대회를 끝으로 삼성 월드 챔피언십은 이듬해 미국으로 옮겨 2009년까지 열렸다. 미국 무대로 옮겨져 개최됐지만, 이 대회는 LPGA 투어 진출을 노리던 한국 선수들에겐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꾸준하게 국내 투어 상위 랭커들이 초청돼 미국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2016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공식 은퇴한 박세리. [사진 Gettyimages]

제주→경주에서 이어진 LPGA 대회,
신데렐라 탄생 등용문으로…

1998년 이후 박세리를 필두로 김미현, 박지은, 한희원, 장정 등 한국 여자 골퍼들의 LPGA 진출 러시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잠시 끊겼던 LPGA 한국 대회 개최에 힘이 실렸고, 2002년 10월 제주 서귀포의 나인브릿지 골프 클럽에서 새로운 LPGA 투어 대회가 열렸다. 이때 시작된 스포츠투데이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은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대회의 뿌리 같은 대회였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코오롱 하나은행 챔피언십(2006년), 하나은행 코오롱 챔피언십(2007~2009년), 하나은행 챔피언십(2010~2011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2012~2018년)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은 당초 2001년에 열리려 했다가 당시 9.11 테러와 이에 따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으로 취소됐다. 이듬해 10월 열린 스포츠투데이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에선 삼성 월드 챔피언십 때보다 훨씬 많은 84명이 출전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건 박세리와 소렌스탐의 맞대결이었다. 당시 이 대회 전까지 9승을 거둔 소렌스탐, 4승을 달성한 박세리는 나란히 상금 랭킹 1,2위를 달리고 있었다. 사흘 동안 열린 대회에서 마지막에 웃은 건 박세리였다. 제주 특유의 강풍에 선수들 대부분 고전한 가운데, 박세리는 출전 선수 중에 홀로 언더파 스코어(3언더파)를 기록하고 시즌 5번째 정상에 올랐다.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한국 선수였다. 소렌스탐은 공동 5위(6오버파)로 마쳤다.

2003년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LPGA 비회원이었던 안시현이 박세리, 박지은 등을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 대회 전까지만 해도 국내 정규 투어에서 우승이 없던 안시현은 일약 ‘벼락 스타’가 됐다. 프로 첫 우승을 LPGA 투어 대회에서 거둔 기쁨은 물론, 다음 시즌 LPGA 투어에 곧장 진출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안시현은 한동안 ‘골프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다. 안시현을 시작으로 2005년 이지영, 2006년 홍진주, 2014년 백규정, 2017년 고진영까지 한국 선수 5명이 한국에서 열린 LPGA 대회 우승으로 다음 해 미국 진출 꿈을 이뤘다. ‘스타 탄생 등용문’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 덕분이었다.

잠시 침체를 겪은 적도 있었다. 2002년부터 4년간 제주 나인브릿지 골프 클럽에서 열린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은 2006년 대회를 운영하는 메인 후원사가 바뀌면서 코오롱·하나은행 챔피언십이란 이름으로 열렸다. 장소도 코오롱이 소유한 경북 경주의 마우나 오션 골프&리조트 코스로 옮겼다. 그러나 대회 한달 전 갑작스레 메인 후원사와 장소가 바뀌었고, 상위 랭커들이 대거 불참해 김빠졌단 평가를 받았다.

2007년 대회를 재정비해 열린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선 당시 세계 1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 국내 랭킹 1위 신지애가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강풍에 따른 악천후 탓에 대회 3라운드가 취소되는 등 파행 운영되는 허점을 노출했다. 대회장을 찾은 갤러리들의 항의 소동이 빗발쳤고, 1·2라운드 선두였던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이 우승을 하고도 찝찝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2009, 2010년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최나연. [사진 Gettyimages]

스카이72 오션 코스서 11년간 개최,
스타 대거 등장에 구름 갤러리 몰려

2008년 대회부터 한국 개최 LPGA 대회는 수도권 지역인 인천 스카이72 골프클럽 오션 코스에서 열렸다. 잭 니클라우스가 디자인 컨설팅을 맡아 명품 코스로 명성이 자자했던 스카이72 오션 코스에서 LPGA 대회가 11년 동안 개최됐다. 2010년부터는 KEB하나은행이 타이틀 스폰서로 단독 참여하면서 2018년까지 대회를 치렀다.

스타도 여럿 탄생했다. 2008년 대회에서 우승한 캔디 쿵(미국)은 5년 만에 LPGA 대회 정상으로 부활을 알렸고, 2011년 대회에서 우승한 청야니(대만)는 당시 세계 1위에 오른 위용을 과시했다. 2009·2010년 대회 2연패를 달성했던 최나연, 2015년 대회 우승자 렉시 톰슨(미국), 2016년 대회 우승자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는 프로 데뷔 초기에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LPGA 투어에 롱런할 발판을 마련했다. 2018년 대회에서 우승한 전인지는 슬럼프를 딛고 거둔 우승에 굵은 눈물을 흘려 주목받았다.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골퍼들을 직접 볼 수 있는 특징 때문에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 수가 매년 늘었다. 최종 라운드엔 챔피언 조에 구름처럼 갤러리가 몰려들어 따라다니는 장관이 만들어졌다. 스카이72 오션 코스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2018년 대회 땐 6만8047명의 최다 유료 관중 기록이 작성됐다.

특히 2017년에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은 당시 국내 톱 골퍼들 간의 치열한 우승 경쟁에 큰 관심이 쏠렸다. 이때 최종 라운드 하루에만 3만1726명의 갤러리가 몰렸다. 고진영·박성현·전인지가 모인 ‘챔피언 조’에 관심이 집중됐다. LPGA 투어에서 활약중이던 박성현, 전인지는 많은 팬을 보유한 스타 골퍼들이었다. 여기에다 고진영은 국내 투어 정상급 골퍼였다. 필드에선 이들이 샷을 할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여기서 마지막에 웃은 게 고진영이었다. 다른 경쟁자들이 하나둘씩 보기로 주춤한 사이 고진영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선두를 지켰다.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를 기록한 고진영은 박성현(17언더파), 전인지(16언더파)를 제치고 국내에서 처음 LPGA 투어 대회 우승을 맛봤다. 이 대회 우승으로 다음 시즌 LPGA 투어에 직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고진영은 1달여 간 고민 끝에 미국 진출을 선택했다.


지난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고진영. [사진 Gettyimages]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모범 보인 대회,
한국 선수 LPGA 200승 대기록도…

KEB하나은행과 LPGA가 계약을 끝내면서 LPGA 투어 한국 대회는 2019년부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때 자동차 기업인 BMW가 나섰다. 2015년부터 4년 동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를 개최했던 BMW는 부산 기장의 LPGA 인터내셔널 부산(현 아시아드 컨트리클럽)에서 LPGA 투어 대회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을 치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LPGA 투어 대회도 계속 해서 치를 수 있게 됐다.

LPGA 투어 상금 순위 상위 50명과 KLPGA 소속 30명, 대회 조직위원회 추천 선수 4명 등 총 84명이 나선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은 첫해부터 많은 화젯거리를 남겼다. 지방에서 개최됐지만, 대회 첫해였던 2019년에 1~4라운드 총 7만여명의 갤러리가 골프장을 찾았다. 평일에도 1만여명이 몰렸고, 우승자가 나온 최종 라운드엔 3만3000여명이 운집했다. 이에 국내 선수들도 화답하듯 막판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다.

첫 대회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은 장하나였다. 최종 라운드에서만 7타를 줄여 합계 19언더파를 기록한 그는 대니엘 강(미국)과 연장 승부를 치렀다. 연장전이 3차례나 치러졌을 만큼 승부는 팽팽했다. 그러다 3차 연장에서 1.5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고서 이 대회 초대 챔피언이 됐다. LPGA 투어에 진출했다 2017년 국내로 복귀한 장하나는 한국에서 열린 LPGA 대회에서 모처럼 우승을 추가했다.

전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2020년 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2021년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은 LPGA 대회의 모범이 됐다. 주최 측인 LPGA와 BMW, 문화체육관광부, 부산시 등이 협력해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구축한 덕에 그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LPGA 대회를 열었다. 코로나19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 장치와 방역 시스템을 운영했고, 큰 사고 없이 대회를 치러냈다.

이 대회에선 특히 한국 여자 골프에 뜻깊은 기록이 세워졌다. 고진영이 임희정과 연장 끝에 정상에 올라 한국 선수들의 LPGA 투어 통산 200승 기록이 작성됐다. 19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우승했던 고(故) 구옥희 이후 이어져 온 한국 선수들의 LPGA 투어 우승 기록에 고진영이 또하나의 이정표를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워 의미가 더 컸다.

※ 해당 콘텐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0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