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가 선보인 작품엔 모두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되찾은 나' 앞에서 물음표를 가리키는 전인지. 김지한 기자
프로골퍼 전인지는 2022년 한국 여자 골퍼 가운데 가장 뜨겁게 활약했던 골퍼로 꼽힌다. 지난 6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KPMG 여자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활짝 웃었다. 한동안 겪었던 부침을 이겨내고 거둔 우승이라 무척 뜻깊었다. 그는 지난달엔 LPGA의 정신과 이상,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선수에게 수여하는 LPGA 파운더스 상도 받았다. 성적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한층 더 드높인 한 시즌을 보냈다.
이번 연말, 전인지는 어느 때보다 남다르고 색다른 연말을 보내고 있다. 화가로 변신해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앵무새를 주로 그리는 박선미 작가를 지난해 연말 만나고서 지난 5월부터 본격적으로 그림 작품 작업을 시작해 틈틈이 작업 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지난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본 화랑에서 ‘앵무새, 덤보를 만나다 : 호기심이 작품이 될 때’라는 타이틀의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한 시즌을 부지런히 보내고 쉴 법도 하지만 미디어와, 그리고 팬들과 소통하면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지난 23일 전인지를 만났다. 영하 10도 안팎의 추운 날씨에도 그림을 보러 화랑을 찾은 사람들을 위해 '작가 전인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신이 그린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하면서 정성스럽게 인사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지칠 법도 하지만, 그는 내내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느껴졌다.
자신의 화랑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설명하는 전인지. 김지한 기자
전인지는 그림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의 마음, 생각을 한껏 담아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어떤 감정을 갖느냐에 따라 그림에 갖는 느낌이 달라지곤 했다"고 말했다. 전인지가 선보인 작품에선 그의 별명인 ‘덤보(dumbo)’ 캐릭터를 골프와 접목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엔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작품에 모두 물음표가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어떤 작품엔 그린의 홀 앞에 물음표가 있었고, 또다른 작품엔 덤보의 코에 물음표가 있었다. 또 어떤 작품에는 108개의 물음표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한 표현을 담은 것도 있었다.
전인지와 함께 작업한 박선미 작가는 “(전인지는) 정말 호기심이 많은 작가다.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묻고 알아가려는 자세가 누구보다 남달랐다”고 말했다. 단순히 그림만 그렸던 게 아니라 작품 하나에 자신의 철학을 오롯이 담기 위한 노력이 대단했단 걸 짐작하게 했다. 그만큼 전인지는 모든 게 궁금했다. 그 궁금증 속에서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더 큰 의미론 인생의 그림을 그려가는 듯 했다.
전인지에게 물음표가 어떤 의미의 존재인지 직접 물었다. “물음표가 없었으면 제가 성장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힘들지 않았을까요? 저한테는 가고자 하는 방향에 끊임없이 생긴 호기심 덕에 물음표가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스스로 계속 발전해가고 나아가고 싶어요. 그만큼 계속 물음표를 갖고 살아갈 것 같아요.”
전인지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목표도 자주 바뀐다고 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물음표가 생길 법 했다. 그래도 그가 믿는 건 있다. 오랜 투어 활동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졌다. 좀 더 큰 생각을 갖고, 자신이 끊임없이 떠올린 물음표의 답을 하나하나 찾으면서 발전해가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인지의 작품들. 김지한 기자
전인지의 2023년 골프 목표는 단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꼽을 만 하겠다. 그는 셰브론 챔피언십 또는 AIG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특히 지난해 연장 끝에 준우승한 AIG여자오픈은 더욱 우승하고 싶은 무대로 꼽을 만 하다. 그는 "2023년엔 2등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고 싶다. 그만큼 더 열심히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2023년의 완전한 목표로 생각하진 않는다. 골프 선수 외에도 그가 성장하고 싶은 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무엇무엇을 하고 싶다고 한정 짓지 않으려고 해요.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해서 훗날 나이를 더 먹고서 정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그 기본을 잘 다지는 해를 만들고 싶어요.”
전인지는 물음표에 대해 “뭔가 답을 찾기 힘들 땐 계속 (물음표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의미’에서의 물음표는 갖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물음표다. “제 작품 중에 물음표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기도 하고, 물음표를 여러가지 다른 색으로 표현한 것도 있어요. 여러 가지 물음표가 있지만, 2023년엔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고, '뭔가 난 할 수 있다' 라는 믿음을 갖고 한 해를 보내고 싶어요.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면서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드는 물음표는 추구하고 싶지 않아요.” 이른바 ‘좋은 물음표’를 갖고 발전하고 싶단 전인지, 서른을 앞둔 그의 골프는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 지금보다 더욱 기대를 갖게 만든다.
◆ ‘김지한의 골프 담화설록’은 말하고(談) 이야기하고(話) 의견을 전하고(說) 기록하는(錄) 한자 뜻을 모두 담아 골프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