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KLPGA 사옥 개막식. 이후 이사회에서 집행부간 내홍이 벌어졌다. [사진=KLPGA]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수년째 해외 투어에 귀 막고 쇄국정책을 취하는 기조는 바뀔수 있을까? 아쉽지만 요원해보인다.
지난해와 올해의 KLPGT 사업 목표는 ‘글로벌투어를 지향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해외 선수들에게 국내 투어 출전권을 부여해 국내 투어를 뛰게 문호를 연다는 의미일 뿐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BMW레이디스챔피언십을 ‘비공인 대회’로 규정하고 선수의 출전을 막겠다는 입장은 변화가 없다.
지난주 금요일(3월29일) 열린 KLPGA 이사회에서는 수석부회장, 부회장, 전무의 집행부를 꾸리지 못했고 파행으로 끝났다. 1년 임기를 남긴 회장을 흔들려는 이사들의 반란이란 지적도 레임덕이란 분석도 있다. 결국 이사 연임에도 실패한 김순미 전 KLPGA 수석부회장이 임기를 다시 연장하게 된 가운데 개막전은 내일 열린다.
이사회의 파행의 씨앗은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이 KLPGA회장이던 5년 전에 이미 뿌려졌다. 2019년 3월 정기총회에서 김 회장은 수석부회장을 비롯해 부회장, 전무이사 등 집행 임원을 대의원 선출제에서 회장 지명제로 변경했다. 당시 개정된 정관은 주무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승인을 반려했을 정도로 문제점이 지적됐다.
신규 KLPGA 이사진과 이전 집행부.
문체부는 ‘이사들은 회장의 권력 독식 구조를 막는 역할인데 주요 임원이 선출제에서 지명제로 바뀌면 회장에게 권력이 집중될 여지가 있다’고 반려 이유를 들었다. 그러자 협회는 ‘회장이 집행 임원을 지명해 선임한다’는 내용을 ‘회장이 지명하고 이사회 동의를 얻어 회장이 선임한다’로 문구만 살짝 바꿔 승인을 얻어냈다.
5년 전과 지금의 차이를 밝히자면 당시 회장은 잘 나가는 건설그룹 회장이었고, 지금 회장은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 회장을 겸직하다 이사들의 등쌀에 지난해 3월 AGLF 회장직까지 사임한 금융사 출신이라는 데 있다. 회장이 집행부를 마음대로 뽑도록 전권을 주었던 KLPGA가 지금 와서 돌연 회장과 대립하는 건 넌센스다.
KLPGA가 지난달 21일 총회를 열고 뽑은 이사진은 어떤 사람들인가? 대부분 국내 투어에서만 활동하던 선수들이다. KLPGA투어 선수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우승으로, 미국 투어 경험을 한 홍진주가 이사였으나 지난해 임기를 마쳤다. 1999~2000년 KLPGA 상금왕으로 LPGA투어 생활을 한 정일미는 미국행을 택하기 이전에 이사를 맡았다.
KLPGA, KLPGT 집행부에서 해외 투어 경험이 있는 임원은 일본JLPGA투어에서 8승을 한 이영미 KLPGT 대표 정도다. 강춘자 KLPGT 고문은 일본투어 생활을 했으나 국내 투어로 들어와 1999년부터 협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다. 협회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현 KLPGA 이사는 대부분 강 고문 라인’이라고 했다.
한국이 일본에 이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로 진출해 활동한 지 벌써 40년에 달한다. 구옥희 프로가 1985년에 LPGA 퀄리파잉 스쿨에 10위로 합격하고 2년만인 1988년에 LPGA투어 첫승을 올렸다. 하지만 본격적인 LPGA투어 러시를 이룬 건 박세리가 1997년 큐스쿨에 수석 합격하고 이듬해 US여자오픈 등 4승을 거두면서부터다.
이후로 김미현, 정일미 등 KLPGA 상금왕에 올랐던 선수들이 큰 무대를 향했고 미국 무대를 주름잡았다. 49명이 210승을 올렸다. 11년간은 한국인이 시즌 최다승을 거뒀다. 한 시즌에 15승을 달성한 것도 3년이나 된다. 2017년 고진영이 국내에서 열린 LPGA대회로 미국 투어에 진출하는 성공의 사다리가 작동하던 시절까지의 얘기다.
한국 여자 골프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주역인 박세리조차도 KLPGA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건 섭섭한 현실이다. 지난해 박세리는 자신의 이름을 건 대회를 미국에서 KLPGA 개막전으로 열고자 했다. ‘KBS 9시뉴스’ 등 방송 매체에 나가서 한국 여자 선수의 미국 진출 가교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박세리챔피언십 챔피언 코다와 함께 한 박세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올림픽 골프 감독을 지내고 국내 무대 8승까지 거둔 박세리의 뜻은 KLPGA에는 전혀 먹혀들지 못했다. 박세리는 OK저축은행 후원으로 KLPGA 대회를 8년간 진행했으나 결국 박세리는 LPGA로 옮겨가 퍼힐스박세리챔피언십을 개최했다. 오히려 판을 더 키운 건 성공적이었다. 해외 미디어들도 ‘박세리가 자신의 이름을 건 대회를 연 아시아 최초 선수’로 극찬했다.
박세리가 국내에서 정말 배척받은 것일까? 국내 모 대행사는 소위 ‘강춘자 인비테이셔널’을 타진하고 있다. KLPGA 회원 1번인 강 고문의 영향력 때문이다. KLPGA 이사진에 LPGA투어 출신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우리의 해외 투어 개척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해외 투어를 경험한 이들이 한 명도 없는 조직에 국제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
국내에서 다들 상금왕을 하거나 잘하는 선수들이 미국 무대를 찾아갔으나 돌아와서 국내 투어에 목소리를 내는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칫 텃세가 작용하는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LPGA투어를 경험한 한 선수는 “해외 무대를 경험한 많은 후배들이 행정가로도 활동하면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말을 아꼈다.
KLPGA 개막전을 하루 앞두고 회장과 이사들이 집안 싸움 벌이는 모습에 씁쓸하다. KLPGA의 자양분으로 자란 선수들이 LPGA투어로 나가 활약하던 상생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글로벌 투어’라는 구호가 입에서만 맴도는 공허함에 입맛이 쓰다. 원칙은 제쳐두고 흥행만 몰두하는 군상들의 행태가 잔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