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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골퍼 계보 이어갈 ‘낭랑 18세’전영인

신봉근 기자2018.01.09 오전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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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 톰슨, 리디아 고에 이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역사상 세 번째로 나이 제한 벽을 뚫고 프로가 된 전영인. 시종일관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골프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영락없는 프로 골퍼였다. [사진 신중혁]

LPGA에 드디어 2000년생 ‘밀레니엄 베이비’가 등장한다. LPGA의 나이 규정을 뚫고 올해부터 2부 시메트라 투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전영인이 그 주인공이다.

LPGA는 지난해 7월 나이 제한 규정 적용 유예 신청을 받아들이고 전영인에게 LPGA 퀄리파잉(Q)스쿨 응시 자격을 부여했다. 본인보다 최소 한두 살 이상 많은 언니들과의 경쟁이었지만 전영인은 거침없었다. 1차에서 56위를 기록한 뒤 2차에서는 18위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LPGA 입성에 성공했다. 1부 투어 시드가 주어지는 최종전이 남아있었지만 전영인은 최종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전영인은 “1, 2차를 통과하면 3차를 나가지 말고 2부 투어를 뛰기로 LPGA와 합의를 봤었다”고 불참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종전 코스가 정말 좋아하는 코스여서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욕심도 살짝 내비쳤다.

LPGA의 나이 제한 규정을 뛰어넘은 것은 렉시 톰슨, 리디아 고 이후 전영인이 세 번째다. 톰슨과 리디아 고 모두 LPGA투어에서 정상급 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그만큼 LPGA가 전영인의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영인 본인은 “나는 내 자신이 그렇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LPGA쪽에서 좋게 봐준 것 같다. 세 번째로 나이 제한을 뚫은 것도 처음에는 몰랐다. 그냥 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는데 기사를 통해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혼자 ‘나 좀 짱인가봐’라고 생각하면서 웃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부담감도 있다. 1부 투어에 입성하려면 시메트라 투어에서 상금 랭킹 10위 안에 들어야 한다. 아니면 또 한 번 Q스쿨에 응시해야 한다. 전영인은 “1년 안에 1부 투어에 들어가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남들보다 1년 먼저 프로에 데뷔하기 때문에 2년을 뛴다고 해도 나이에 맞게 가는 거니까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고 했다.

전영인은 지난해 9월 맥케이슨 뉴질랜드 오픈에서 아마추어 초청 선수 신분으로 1부 무대를 경험했다. 첫 출전임에도 이븐파 공동 43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305야드 거리의 파4, 15번 홀에서는 1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전영인은 "사실 안 떨 줄 알았다. 그런데 몸이 떨렸다. 그래도 TV에 나오는 언니들이랑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처음 LPGA 경기 치고는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유명 교습가 아빠를 둔 남다른 DNA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말은 전영인에게 딱 어울리는 수식어다. 유명 골프 교습가인 아버지 전욱휴 프로 밑에서 5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최연소로 전국대회에 출전했고, 이듬해에는 전 세계를 누비며 대회에 나갔다. 아빠가 진행하는 레슨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전영인이 처음부터 골프에 흥미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전영인은 “골프는 어렸을 때 아빠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유치원 끝나면 바로 골프를 하러 갔다.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다. 한자리에서 맨날 똑같은 것만 하고, 또 잘못하면 혼나고 해서 오히려 골프가 싫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전영인을 골프에 푹 빠지게 한 것은 바로 2010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 골프 챔피언십이었다. 이 대회에서 전영인은 9타 차를 뒤집는 역전극을 펼치며 정상에 올랐다. 전영인은 “많은 사람들이 환호해주고 시상식에서 내 이름이 발표되니까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골프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큰 무대에 강한 점도 전영인의 남다른 DNA다. 전영인은 “평소에는 식당에서 주문도 잘 못할 정도로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골프를 할 때는 카메라가 있고, 사람들이 많고,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일수록 더 잘 집중되고 잘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아빠 전욱휴 씨다. 전 씨는 코치와 캐디를 모두 도맡아 하면서 딸의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을 가르쳤지만 영인이는 다르다. 정말 잘할 거다”라며 딸의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전영인도 아빠의 지원에 고마움을 느낀다. 전영인은 “어릴 때는 전영인보다는 ‘전욱휴 딸’로 인식되다 보니까 내가 못하면 아빠한테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 코치와 캐디가 따로 있으면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럴 일이 없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게 아빠니까 되도록 아빠 말에 따르는 편”이라며 “의견이 갈릴 때는 음식 메뉴를 정할때밖에 없다”며 농담을 던졌다.

아빠와 함께 모든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특별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전영인은 그중에서도 ‘삭발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꼽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동 선두로 출발했다가 잘 못해서 한 타 차 2등을 했다. 아빠가 ‘언젠가 삭발을 한 번 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 길로 나를 미용실로 데리고 갔다. 아빠가 미용사분께 ‘삭발시켜주세요’ 하고 나가려고 하길래, 내가 ‘나 머리 자르는 거 봐야지’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아빠는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알고 보니까 딸이 머리 자르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나간 거였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덧붙여 “당시 가발을 쓰고 다녔는데 정말 힘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지만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고 웃으며 털어놓았다.

▶ 롱런 꿈꾸는 18세 장타 소녀

전영인은 장타자다. 신장은 163cm로 크지 않은 편이지만 드라이브샷 거리는 260야드에 육박한다. 가장 멀리 보낸 기록은 280야드나 된다. 전영인은 “예전부터 또래보다 비거리가 많이 나갔다. 그래서 별명이 ‘헐크’였다”며 웃었다.

그러나 전영인은 장기로 ‘아이언 샷’을 내세운다. 전영인은 “드라이버는 장기라기보다는 기복이 없는 편이다. 적중률 70~80%를 항상 유지한다. 장기는 오히려 아이언인 것 같다. 샷 이글, 홀인원 같은 샷은 많지 않지만 홀에 잘 붙이는 편이다. 이번 Q스쿨에서도 두 홀 연속으로 10cm 안에 공을 붙이면서 연속 버디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보완해야 할 점으로는 퍼트를 꼽았다. “퍼트는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다. 이번 전지훈련 때는 퍼트랑 쇼트게임을 더욱 중점적으로 연습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제 막 프로에 발을 내디딘 전영인의 꿈은 ‘롱런’이다. 전영인은 “모든 선수가 타이틀 욕심은 있을 것이다. 나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래오래 골프를 하고 싶다. 40살까지 하고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롤모델도 38살에 은퇴를 선언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다. 특별한 인연도 있다. 2010년 아빠가 출연하는 프로에 소렌스탐이 나와 함께 방송을 했다. 전영인은 “2010년 10살 때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는데 소렌스탐도 10살 때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당시 소렌스탐이 ‘이 대회 챔피언 출신들은 다 우승을 했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난다”고 회상했다. 유소연도 전영인이 닮고 싶은 선수다. 전영인은 “유소연의 연속 컷 통과 기록(64경기)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자기 관리를 정말 잘하는 것 같다. 곧 만날 기회가 있는데 비결을 묻고 싶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신봉근 기자 shin.bongge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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