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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Back to the Top... 시련 끝에 더 성숙해진 골퍼, 김비오

김지한 기자2022.08.16 오전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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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포토그래퍼 이우헌]

“어휴, 힘들긴 힘드네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하는 남자 선수가 스케줄을 고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선수로서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하하.”

지난 7월 어느 날, 인터뷰에 나선 김비오는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온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스코티시오픈에 출전한 뒤 곧장 한국에 온 탓에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초부터 국내는 물론 태국,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돌면서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향후에도 아시안투어, DP 월드 투어(유러피언투어) 등 해외 투어 일정에 대한 고민이 쭉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올해 김비오는 한국 남자 골퍼 중에서 가장 뜨거운 상반기 시즌을 보냈다. 연초 아시안투어에서 꾸준하게 상위권 성적을 낸 그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일찍이 2승을 달성했다. 5월 초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우승했고, 곧장 6월 초 SK텔레콤 오픈에서 정상에 올라 통산 8승을 달성했다. 연이어 좋은 성적을 낸 덕에 제네시스 포인트, 상금 등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도 상위권에 올랐다. 1990년생, 올해 서른둘인 그를 두고 ‘골프에 새롭게 눈을 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비오 스스로도 올 시즌 상반기 성과에 대해 만족해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캐디백을 메고 있는 이순석 캐디와의 호흡을 원동력으로 꼽았다. “워낙 함께 알고 지낸 지 오래 됐어요. 제 캐디가 김효주, 유소연, 장하나 등 최고의 여자 프로들하고도 우승 경험이 있어요.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가 많다보니까 선수가 놓치는 세밀한 코스 상태라든지, 공략법과 같은 도움을 많이 줘요. 그러면서 골고루 성적이 좋게 나온 것 같아요.”

1월부터 아시안투어에서 2022시즌을 일찌감치 시작한 김비오는 어느 때보다 체력 관리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자신만의 루틴에 맞게 몸 관리를 해 아직까진 잔부상 없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스트레칭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나름대로 격렬하게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했는데, 그렇게 하면서 부상이 잦더라고요. 웨이트 트레이닝도 좋지만, 제게 잘 맞는 맨몸 운동을 해요. 대회 때에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몸 관리를 하고 있어요. 마시지도 필수죠. 뭉쳤던 근육을 스스로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올 시즌 코리안투어와 아시안투어를 병행하면서 각종 부문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김비오는 “연말에 모처럼 시상식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심 지난해 김주형처럼 코리안투어와 아시안투어에서 모두 대상을 받는 걸 노리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주사위는 한 번 던져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사진 포토그래퍼 이우헌]

3년 전 손가락 욕설 파문,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단단해진 계기

김비오가 다시 파죽지세로 우승하는 골퍼가 되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비오는 2019년 9월, DGB금융그룹 볼빅 대구경북오픈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중심에 섰다. 갤러리의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에 격분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한 뒤, 드라이버로 티잉 그라운드를 훼손하는 사고를 쳤다. 김비오는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마냥 웃을 수 없었다. 해당 장면이 그대로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탓에 파문은 컸다. 당시 김비오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상벌위원회 회의에 출석하기 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러나 상벌위원회로부터 자격정지 3년, 벌금 1000만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징계가 과하다는 지적이 일자 자격정지 기간이 1년으로 줄었지만, 김비오를 향한 골프계의 시선은 따가웠다.

3년의 시간이 흘러 2022년, 김비오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실수는 정말 잘못했고 또 죄송합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더 좋은 일을 하는 선수이자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도 당시의 상황이 김비오 개인에겐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사건 이후 제 스스로를 되돌아봤어요. 힘든 상황이었지만 스스로 반성했고, 좀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사소한 부분에도 감사하게 됐어요. 그렇다 보니까 심리적으로도 모든 상황을 대처하는데 조금 더 유연해졌어요.”

김비오는 이후 확실히 달라졌다. 김비오는 지난 6월 경남 양산 에이원CC에서 열린 KPGA 선수권대회 3라운드 도중 3년 전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샷을 할 때마다 한 갤러리가 눌러대는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음에 집중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스윙하는 순간마다 이어진 셔터 소음에 캐디가 “계속 이러시면 어떻게 하냐”고 해당 갤러리를 향해 항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침착하게 경기 운영을 했던 김비오는 갤러리를 향해 “죄송합니다. 스윙할 때만 좀 안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이어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다음 홀로 향했다. 해당 영상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김비오의 멘털이 단단해졌다’ ‘의연하게 대처해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비오는 20대 초반엔 ‘바른 생활 사나이’로 불렸다. 필드 위를 걷다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있으면 바로 줍는 매너 있는 태도 때문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시련을 겪었지만, 김비오는 다시 ‘착한 골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자신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갤러리들에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다시 갤러리들과 필드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됐잖아요. 따뜻했어요. 사실 조금은 걱정도 됐어요. 잘 봐주실 지… 그래도 굉장히 따뜻한 반응이었어요. (갤러리들의 응원 덕에) 제 플레이에도 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어요. 감사해요.”

골프에 빠져 산 중학교 시절,
굴곡 많았던 김비오의 프로 생활

잠시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김비오는 어린 시절부터 한국 남자 골프를 이끌 선수로 주목받았다. 아버지 김승국 씨의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고, 중학생 땐 미국에서 골프 유학을 했다.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가 된 그는 2008년 한국과 일본의 아마추어선수권을 한해에 동시 제패하는 기록을 세웠다.

김비오는 맨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당시에 최경주, 박세리 프로를 보고 골프에 관심을 가지면서 아마추어 주말 골퍼가 되셨어요. 그러다가 아들에게 골프를 시켜보고 싶으셨나 봐요. 아버지가 ‘가볼래?’ 하셔서 가보겠다고 하니까 ‘시작은 마음대로 해도 끝내는 건 마음대로 못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엔 골프가 정말 재미 없더라고요. 어렸을 때 활동적인 편이었는데, 연습장 한 타석에서 계속 몇 시간씩 공을 치는 게 벌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집 주변에 있던 퍼블릭 골프장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골프가 재미있어졌고, 선수의 꿈을 키웠어요.”

아버지는 골퍼로서 꿈을 키우는 아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비오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중학교 3년 시절을 보냈다. 이 시기에 말 그대로 골프에 빠져 살았다. 하루는 동생과 학교에서 할로윈 파티에 갔는데, 대부분 할로윈에 맞는 개성 넘치는 의상을 입고 왔지만 김비오는 빨간색 카라 티에 나이키 모자, 골프화를 신고 갔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시그니처 의상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모든 삶이 골프에 맞춰져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대표로 활약한 김비오는 2008년에 자신의 가치를 높인 성과를 냈다. 그해 7월 일본 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9월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선수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김비오는 이 우승으로 2006년 김경태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마추어 골프 대회를 같은 해에 제패한 선수로 기록됐다. 김비오 스스로도 당시의 성과를 떠올리며 흐뭇해했다.

“일본 아마추어선수권 땐 지금은 일본의 간판 골퍼 중 한 명이 된 고다이라 사토시를 매치플레이로 이기고 우승했죠. 아버지가 캐디를 맡아서 더 의미 있었던 우승이었죠. 그때 샷 이글도 하고 좋은 기억이 많아요. 이어서 한국 아마추어선수권에서도 우승을 했는데, 제가 지금도 닮고 싶은 선배 골퍼인 김경태 프로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갔던 게 영광스러웠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아마추어 무대에서의 성과를 발판 삼아 김비오는 2009년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호기롭게 도전했다. 그러나 프로 생활은 내내 순탄치 않았다. 프로 첫 해 일본 무대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는 “꾸준하게 치지 못했다. 예선에서 1~2개 대회를 빼고 전부 떨어졌다. 샷도 고전했고, 플레이가 안 돼서 2010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나마 프로 2년차, 국내 데뷔 첫 해에 김비오는 꽃을 피웠다. 2010년 8월, 조니워커 오픈에서 당시 만 19세 11개월 19일의 나이로 최연소 첫 우승을 거뒀다. 그해 준우승을 3번 했고, 꾸준한 성적을 낸 덕에 2010시즌 발렌타인 대상과 최저타수상, 신인상 등 3관왕을 달성했다. 이어 그해 12월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2011년 시즌에 미국 무대를 밟았다.

PGA 투어 데뷔 첫 해에 상금 랭킹 125위 안에 들지 못해 이듬해 PGA 2부 투어로 활동 무대를 옮긴 김비오는 2012년에 다시 웃었다. 매경오픈과 SK텔레콤 오픈 등 굵직한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했다. 그리고서 7년 동안 우승 없이 부침을 겪다 2019년 4월 군산CC 오픈에서 7년여 만에 우승했다. 비로소 당당하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이우헌]

김비오를 바꾼 아내의 조언,
“가족은 나의 힘”

김비오는 우승 없는 기간이 길었던 걸 슬럼프로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나만의 플레이 스타일이 있다. 또박또박 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안 될 땐 시원하게 안 되고, 될 땐 정말 잘 되는 식이었다. 자신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잘 하면 언젠간 우승할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우승 없는 시간이 길어지자 스스로 ‘다시 우승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내 배다은 씨의 진심 어린 조언이 김비오의 생각을 바꿔 놨다. “2018년에 결혼한 뒤 아내와 같이 미국 2부 투어 생활을 할 때였어요. 어느 날 아내가 저를 보고 ‘왜 안 되는 걸 억지로 해? 되는대로 하면 편할텐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전까진 제 마인드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 뒤에 백종원 씨가 나오는 골목식당을 보는데, 가끔 점주들이 고집 센 분들이 나오는 걸 보고 아내한테 ‘나도 저 분들처럼 고집이 센 것 같아?’라고 물었죠. 그 때 아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거기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레슨을 받을 때도 온전히 못 받아들이고, ‘난 이렇게 해야 돼’ 하면서 저만의 고집이 셌던 것 같아요. 좋아질 수 있는 틈이 없었죠. 그때 컵에 차 있던 물을 비워내는 시기가 왔어요. 온전히 비워내고 다시 채웠죠.”

김비오에게 아내 배 씨는 진정한 동반자이자 매니저 같은 존재다. 2012년 겨울에 교제를 시작해 2018년 3월 결혼한 김비오는 아내에게 고마움은 물론 미안한 마음이 컸다. 공교롭게 연애를 시작한 뒤부터, 결혼하고서도 1년 가까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내 배 씨가 뒷바라지하면서 기다려줬으니 김비오 입장에선 고마울 뿐이었다.

아내 배 씨는 지금도 김비오에게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전문가의 생각으로만 듣고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까 한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래도 아내의 조언을 하나둘 듣다 보니까 기본을 놓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내를 만나고서 골프에 대한 생각을 유연하게 갖고 대처하게 됐죠. 아내가 딱 지금은 제 매니저이자 친구 같은 역할을 잘 하고 있어요.”

아내 외에도 김비오의 골프 인생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존재는 가족이다. 그는 지난 5월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10년 만에 이 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 순간, 현장엔 김비오의 가족이 총출동했다. 아내와 두 딸, 양가 부모님 등 10여명이 현장에서 김비오와 함께 우승 기쁨을 나눴다. “그때 공교롭게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동시에 걸쳐 있었어요. 감회가 새로웠죠. 온 가족들 앞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김비오는 매경오픈 우승에 대해 스물두 살 청년이었을 때 우승을 거둔 뒤 서른두 살 아버지가 돼 다시 한번 정상에 올라 의미가 컸다고 했다. “10년 전 우승했을 때 딸이 될 지, 아들이 될 지 모르겠지만 우승을 확정짓는 퍼팅을 했을 때 저한테 뛰어 와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봤어요. 제 버킷리스트였죠. 작년 시즌 최종전 때 우승했지만, 그땐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갤러리 입장이 안 돼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죠. 이번에 두 딸 앞에서 당당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그는 이어 SK텔레콤 오픈에서도 매경오픈과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우승해 아내, 두 딸과 또 한번 기쁨을 나눴다.

2019년 12월 태어난 큰 딸 주아 양, 지난해 10월 출생한 둘째 딸 세아 양은 김비오에게 든든한 응원군이다. 그는 “첫째 주아는 내가 골프 선수라는 걸 아는 것 같다. ‘아빠 우승해! 골프 잘 하고 와!’라고 주아가 응원하는 영상을 아내나 처제가 보내오면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직업이 일반적으로 출퇴근하는 아빠가 아니니까, 어떨 땐 한 달씩 함께 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아빠로서 역할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도 진심이 닿았는지, 딸들이 저와 잘 놀아주는 것 같아요. 하하. 나중엔 함께 여행도 가고 싶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딸들이 크면, 아빠가 힘들게 한다고 할 것 같은데 어쩌죠? 하하.” 이 말에서 ‘딸바보 아빠’의 면모가 느껴졌다.

김비오는 두 딸을 골퍼로 키우고 싶냐는 질문에 “왠만하면 안 시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원하고, 악착같은 성격이면 시켜볼 마음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악착같은 게 없으면 쉽지 않다. 굳이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포토그래퍼 이우헌]

미국은 언젠가 정복할 꿈의 무대,
“최고의 선수, 아빠, 남편이 되고파”

김비오는 스스로 ‘비포장도로 같은 골퍼’라고 표현했다. 굴곡진 프로 생활을 한 그에겐 어울리는 비유였다. 그는 “잘 다듬어지지 않고, 기본기가 단단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그린으로 가서 홀아웃 하고 그 다음에 가서 이뤄지는 상황에 맞춰 대처하는 게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오랜 골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도 있다. 30대가 되고 난 뒤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예년에 비해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올해 전반기에 꾸준한 성적을 낸 원동력도 유연한 사고방식을 꼽았다. 그는 “당연히 안 맞을 때도 있고, 느낌이 좋을 때도 있고, 있는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게 경기력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럼에도 김비오는 여전히 도전을 즐기고 있다. 더 많은 우승 그리고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는 꿈 말이다. 미국은 그가 진정으로 다시 도전하고 싶은 무대다. 김비오는 2011년 PGA 투어, 2012년과 13년, 18년에 3년 동안 PGA 2부 투어에서 활동했을 만큼 미국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컸다. 그는 스스로 PGA 투어를 “언젠가 정복할 꿈의 무대”라고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친한 프로님한테 좀 더 넓은 무대에서 날씨, 시차, 언어 등의 장벽을 극복하면서도 꾸준하게 스코어를 낼 수 있는 선수가 돼야 진정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얘기했어요.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과 만나기 직전 경험한 PGA 투어 제네시스 스코티시오픈은 김비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대회가 열린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 베릭 더 르네상스 클럽은 링크스 코스다. 골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처음 영국의 링크스 코스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얻은 게 있었다. 그는 “이전까지 그린에 무작정 올리고, 바람 부는대로 치는 단순한 골프를 했다면, 링크스 코스는 골프에 대한 시각과 플레이 자체를 다르게 가져가야 했다. 그만큼 골프에 대한 시각과 생각이 넓어졌다. 한정적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것보다 나가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골퍼가 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론 세계 30위 안에 드는 선수가 되고, 국내에서 20승 이상 거둬 영구 시드를 확보하는 게 먼 목표”라는 김비오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을까. 그는 “최고의 선수이자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인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골프에 매달리는 게 당연할 수 있지만, 가족에게 소홀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못 보면 아쉬울 것 같다. 욕심일 수는 있어도 노력해보겠다”는 게 그의 말이다. 비온 뒤 더 굳어지는 땅처럼 김비오는 시련을 극복해오면서 더 단단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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