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투어에서는 왼손잡이를 대표하는 골퍼로 필 미켈슨(왼쪽)과 버바 왓슨이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아들을 마스터스에서 우승시키고 싶은 골프 대디가 있다면 일찌감치 왼손잡이로 키워야 할 것 같다.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끝난 78회 마스터스에서 왼손잡이 버바 왓슨(36·미국)이 8언더파로 우승했다. 2012년에 이어 3년 새 두 번째 그린재킷을 입었다. 최근 12차례 마스터스에서 왼손잡이의 우승은 50%인 6회다. 정상급 골프 선수 중 왼손잡이 비중은 5% 미만이다.
역대 메이저대회에서 왼손 골퍼의 우승은 총 9회다. 그 중 3분의 2인 6번이 마스터스에서 나왔다. 마스터스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한 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이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홀이 많아서다. 특히 파 5홀 중 3개가 왼쪽으로 휘어 있다. 왼쪽으로 돌려 치는 선수가 2온 하기에 절대 유리하다. 오른손잡이도 왼쪽으로 휘어 칠 수는 있지만 위험하다. 그러려면 드로(draw) 구질을 쳐야 하는데 런이 많이 생겨 컨트롤이 잘 안 된다. 반면 왼손잡이는 페이드(fade)를 치면 되는데 거리 통제가 가능하다. 원로 골퍼 리 트레비노(75·미국)는 "페이드는 말을 듣지만 드로와는 대화가 안 된다"고 했다.
오거스타에서 왼쪽으로 너무 많이 휘면 대형사고가 난다. 아멘코너의 마지막인 13번홀(파5) 페어웨이 왼쪽엔 개울이 흐른다. 오른손 골퍼들의 꿈들이 이 곳에 빠졌다. 파 5인 2번 홀 왼쪽 숲은 ‘오거스타 여행사’라고 불린다. 잡목이 우거진 이 곳에 들어갔다간 컷탈락할 것이고 일찌감치 짐을 싸야 해서다.
한국 골프는 왼손의 불모지다. 투어프로는 물론,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회원 1330명 중 왼손으로 치는 프로는 한 명도 없다. 여자도 950여 명의 프로가 모두 오른손으로 친다.
왼손잡이가 있긴 했다. 투어 프로였던 조철상(56), 박세수(46)씨다. 박씨는 "1980년대 왼손 클럽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왼손으로 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송병주 KPGA 경기국장은 “사회적으로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고, 왼손 골퍼를 봐 줄 코치도 없었다”고 했다.
요즘도 왼손 골퍼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왼손 클럽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걸 고를 정도로 제품이 다양하지는 않다. 연습장도 구석에서 벽을 보고 치거나 오른손 골퍼를 마주보고 쳐야 한다. 프로 지망 주니어 선수 중 아직도 왼손 골퍼는 보이지 않는다.
박세수 프로는 오른손으로 친 걸 후회한다. "오랫동안 오른손 골퍼로 살았지만 자연스럽지 않아 컨디션에 따라 스윙 변화가 심하다"고 했다.
골프 코스는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진다. 슬라이스가 많이 나는 아마추어를 위해 페어웨이 오른쪽에 언덕을 만든 곳이 많다. 어려운 홀을 만들 때도 오른손잡이 기준이다. 오거스타 골프장도 왼손 골퍼를 위해서 파 5홀을 왼쪽으로 휘어놓은 것은 아니다. 코스 설계자인 알리스터 맥캔지는 파 5에서 2온을 하기 힘들도록 그렇게 했다. 절대다수인 오른손 골퍼는 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왼손잡이라 손해를 봤던 소수자들이 이 난관을 극복하는 유리한 위치에 오른 것이다.
한연희 전 골프 국가대표 감독은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성이 더 강한 경쟁력을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도 왼손잡이 프로 골퍼가 나올 때가 됐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