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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인장에 구멍을 뚫었나

성호준 기자2015.03.21 오전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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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연과 선인장. 2012년 유소연이 이 대회에서 볼이 선인장에 박혀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하고 경기했다.[유소연 페이스북]

미국 서부 사막 지역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 중계에서 볼 수 있는 삼지창처럼 생긴 선인장은 사와로(saguaro)다. 미국에서 가장 큰 선인장으로 황량한 서부의 상징 격이다. 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이 열리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 파이어 골프장에도 이 선인장들이 자란다.

자세히 보면 선인장 줄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을 볼 수 있다. 공을 똑바로 치지 못하는 골퍼들에게 수난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공을 잘 치는 프로골퍼도 선인장에 구멍을 낸다. 2012년 유소연이 이 대회에서 볼이 선인장에 박혀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하고 경기했다.
위치상 도저히 공이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선인장에도 구멍이 뚫린 것이 목격된다. 클럽 하우스 앞에 있는 선인장, 티잉 그라운드 뒤에 있는 선인장에도 홀이 보인다. 골퍼들이 얼마나 공을 괴상하게 치기에 물리학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 구멍을 만드는 것일까. 혹시 일부러 선인장을 타깃으로 드라이브샷을 날리는 골퍼가 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범죄일 수도 있다. 애리조나 주는 사와로 선인장을 법으로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건축물을 짓거나 도로를 만들 때 사와로 선인장이 하나라도 걸려 있다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와로를 완벽히 옮겨 심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소연이 2012년 선인장에 박혀 있는 공을 그대로 쳤다면, 2003년 물수리를 야구공으로 맞혀 죽게 했던 투수 류제국처럼 경찰조사를 받지는 않더라도 팬들의 눈총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와로에 난 모든 구멍이 골퍼 책임은 아니었다. 애리조나에 거주하는 이범용씨는 “새가 구멍을 파고 사와로 속에 알을 낳고 산다. 구멍 안 온도는 밖의 온도보다 2~3도 낮다”고 설명했다. 특히 애리조나 딱따구리는 주말 골퍼 이상으로 선인장 훼손에 책임이 크다. 사와로 깊이 구멍을 파 꽤 안락한 집을 만들고 또 매년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헌 집은 부엉이 등 다른 동물들이 산다.

애리조나에 사는 이씨는 “사와로 선인장은 팔 같은 가지가 하나 나오는데 80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고 했다. 20m 이상 크는 것도 있다. 높이 10m에 5개의 팔이 자란 사와로는 나이가 평균 200년 정도라고 한다.

JTBC 파운더스컵 1라운드가 열린 20일(한국시간)엔 비가 왔다. 1년 강수량이 10cm에 불과한 이 곳에 비가 내리자 누런색 들판이 갑자기 초록색으로 변했다. 비가 오면서 벌레들이 땅 속 깊은 곳에서 기어 나오자 새들이 신이 나서 먹이를 구하러 분주히 뛰어다녔다. 사와로는 몸이 어코디언처럼 부풀어 올랐다. 비가 올 때 무게가 1톤 이상 늘어나는 사와로도 있다고 한다. 물을 저장해 놓고 아주 조금씩 쓴다.

그린도 물을 먹어 촉촉해졌다. 선수들은 물먹은 사와라가 아니라 부드러워진 그린을 공으로 폭격하고 있다. 평소보다 점수가 좋아 보인다.

피닉스=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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