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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세컨드샷-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성호준 기자2015.03.26 오전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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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사막에서 대결한 김효주와 스테이시 루이스. 만 서른살의 루이스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것 같았으나 열 살 어린 김효주에게는 모자랐다.

25일 쓴 ‘10대 여제 시대’에 대해 여러 분이 메일을 보내주셨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자신이 좋아하는 베테랑 선수가 한 물 갔다고 표현된 것으로 여겨 기분이 상한 팬들이 계셨다. 다른 한 가지는 “다른 스포츠는 몰라도 골프는, 특히 남자 골프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분들이었다.

먼저 두 번째 의견에 대한 답이다. 골프에서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을 때도 있다. 톰 왓슨은 64세이던 지난해 디 오픈에서 컷을 통과했다. 미겔 앙헬 히메네스는 50대 들어 전성기를 달리는 듯도 하다. 그러나 숫자를 따져 보면 아니다. 나이는 숫자 이상이다. ‘10대 여제 시대’에서 쓴 대로 여자 골프에서 나이는 중요하다. KLPGA에서 지난해 우승자 평균 연령은 만 20.7세였고 가장 나이 많은 우승자는 만 28세였다. 올해 LPGA 투어 우승자의 평균 연령은 23세다.

여자투어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남자 대회에서도 그렇다. 1960년 이후 남자 메이저대회 우승자의 평균 나이는 32세다. 21세기 들어 40대 선수의 메이저 우승은 4번에 불과했다. 샷거리가 덜 중요한 디 오픈에서 3번 나왔고 US오픈이나 마스터스에서는 아예 없었다.

예외는 있다. 필 미켈슨이 43세에 디 오픈에서, 잭 니클라우스가 46세에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톰 왓슨은 만 59세에 역시 디 오픈에서 우승 경쟁을 했고 그렉 노먼과 샘 스니드도 50대에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해서 보편적 법칙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김희애가 40대 후반임에도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해서, 그래서 스무 살 아래의 젊은 배우와 극중 데이트를 해도 어울린다고 해서 다른 여배우들이 나이가 들어도 다 예쁜 건 아니다.

골프는 격렬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덜 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는 다른 스포츠처럼 뚜렷하다. 남자 골프의 핵심 연령은 25세에서 35세 정도라고 평가된다. 야구 투수보다 2~3세 높은 정도다. 타이거 우즈를 보라. 그의 마지막 메이저 우승은 32세였다. 30대 초반 갑자기 기량이 떨어지는 메이저리그 투수들 같지 않은가. 팔꿈치가 아프다는 등 이런 저런 이유가 나오는데 그건 대부분 나이 때문이다. 우즈가 앞으로 메이저 우승을 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32세 이후 이런 저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골프에서도 파워는 젊은 선수가 좋고 퍼트도 젊은 선수들이 잘 한다. 톰 왓슨이 나이가 들어서도 변함없이 잘 치는 것 같지만 그도 마지막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나이는 33세였다.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능력도 젊음과 관계가 있다. 짐 퓨릭은 집중력 향상 음료 로고를 모자에 붙이고 다니면서도 지난 몇 년간 4라운드 마지막에 무너져 우승을 놓치곤 했다. 골프에서는 경험과 지혜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중요하지만 통계를 보면 젊음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여자 골프에서 젊음의 잇점은 훨씬 더 크다.

체조는 어린 나이일수록 유연성이 좋고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 과거 구소련이나 동독 혹은 중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어릴 때부터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키고 경험을 키워주면서 어린 챔피언을 냈다. 나이가 들수록 평균대에 올라서 겁이 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체조 메이저 대회는 16세 이하 선수의 출전을 금지한다.

골프의 어린 챔피언이라는 흐름은 한국 혹은 한국계 선수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전력투구한다. 골프는 경험과 지혜가 중요한데 어려서부터 프로처럼 생활한다면 지혜는 몰라도 경험은 충분히 쌓을 수 있다. 또 뛰어난 캐디를 고용해 경험과 지혜를 어느 정도는 살 수 있다.

유연성은 어릴수록 더 좋다. 사실 10대 중후반이면 여성들의 성장은 거의 다 이뤄진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을 붙일 수는 있지만 골프에서는 근력보다 유연성이 더 효용이 있다. 어릴 때일수록 겁도 없다. 별 걱정 없이 싸울 수 있다. 그런 선수가 가장 무서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현명해지지만 그래서 불리한 점도 있다. 세상을 알게 되면서 위험을 피하게 되고 걱정도 많아진다. 미셸 위는 PGA 투어 소니 오픈에 나가 68타를 친지 11년이 지난 현재 경험이 많이 쌓였고 근력도 늘었겠지만 14세 때처럼 유연하고 겁 없이 샷과 퍼트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여성이 가진 본능인 모성애나 이성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은 목표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

골프에서도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이다. 나이가 들어도 잘 할 가능성은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10대 여제 시대’에 댓글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메일이 많이 와서 신기했다. 메일의 문체와 내용은 매우 점잖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댓글을 쓰기에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신 분들인 것 같다. 댓글을 쓰느냐 메일을 쓰느냐에서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는 김효주와 루이스의 대결에서 루이스가 우승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척추에 철심을 박아야 하는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3개월마다 병원에 가야했던 아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4시간 동안의 병원행 자동차 안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던 아이가 최고 선수로 성장한 모습이 멋지지 않은가. 그런 의지를 가진 선수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기자로서 나쁜 것 중 하나는 냉정해야 하는 것이다. 의견이 아니라 사실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루이스처럼 뜨겁게 자신을 불사르는 최경주가, 타이거 우즈가, 박세리가, 서희경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낸다면 가장 크게 박수를 치겠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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