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커
한국 출생 선수들의 LPGA 투어 연승 행진을 끊은 크리스티 커(38)는 미국의 ‘불독’이다. 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 또 리디아 고의 활약에 기가 죽은 듯 했는데 불독은 벌떡 일어나 물었다.
특히 후반 보기를 한 후 4연속 버디를 잡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커는 “새로운 코치와 함께 연습하고 있는데 이번 주 뭔가를 찾았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승부욕과 카리스마가 넘친다. 중계를 보면 자신이 친 볼에 대고 주문을 거는 커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방송이 나오지 않는 곳에서는 그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경기가 잘 안되면 클럽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치기도 하고 땅을 때리기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커와 우승 경쟁을 하는 선수는 기가 죽곤 했다고 한국 선수들은 증언했다. 수잔 페테르센 이전 한국 선수들이 가장 힘겨워한 선수가 크리스티 커였다. 미국 선수들도 커 앞에서는 작아진다. 폴라 크리머, 나탈리 걸비스 같은 스타 선수들이 커에게 꼼짝도 못했다. 미국 선수들의 왕언니, 대장 뻘이었다.
이런 카리스마는 당연히 실력에서 나온다. 커는 이번 대회 포함 LPGA 투어 17승을 했고 잠시나마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 기업인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2012년 스테이시 루이스가 미국의 간판이 되고 나서는 위상이 좀 바뀌었다. 루이스도 승부욕이 강하다. 미국 선수 중 2인자로 지내길 원하지 않았다. 커와 사이가 서먹했다. 지난해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는 한 조로 경기하자는 커의 제안을 루이스가 단칼에 거절했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미국팀은 삐걱댔고 결과적으로 예선탈락했다.
커는 어릴 적 과체중으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허리 40인치에 체중이 82㎏에 달하기도 했으나 독하게 마음먹고 몸을 바꾸면서 자신감을 찾았고 성적도 올랐다.
커는 2013년 킹스밀 챔피언십 이후 2년, 대회수로는 42경기만에 거둔 우승이다. 커는 이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모습도 보였다. 15개월된 아들 메이슨과 포옹을 했다. 엄마가 되어서 첫 우승이다. 커는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가졌다.
커는 “우승 후 웃을 수만은 없었다. 캐디 그랙 존스턴의 아버지가 일 주일 전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캐디를 위해서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커는 또 “지난해는 우승하면 아이와 함께 그린에서 기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우승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승을 못했다. 모든 게 다 이유가 있다. 지난해에는 아이가 나에게 달려올 수 없었다. 아마 그건 운명이었던 것 같다. 올해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커는 1996년 Q스쿨을 통과해 LPGA 데뷔했다가 성적이 좋지 않아 이듬해 다시 Q스쿨을 봤다. 당시 박세리와 함께 공동 수석을 차지했다. 나이도 같다. 최종라운드에서는 박세리와 한 조에서 경기했다.
박세리는 최종라운드 이븐파에 그쳐 12언더파 공동 10위에 불과했지만 동갑인 커의 활약이 보기에 나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박세리는 이번 주 자신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 걸린 ANA인스피레이션(구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나간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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