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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청야니의 몰락과 골프 대디

성호준 기자2016.05.18 오전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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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청야니는 컷 통과가 2차례 뿐이다. 이전 보다 훨씬 심한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 있다.

청야니가 꼴찌가 됐다. 올해 청야니의 드라이브샷 정확도는 46.4%로 155위다. LPGA 투어에서 꼴찌다. 올 시즌 드라이브샷 정확도가 50%가 안 되는 선수는 청야니가 유일하다. 청야니는 원래 드라이브샷 정확도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페어웨이에서 멀리 도망가지도 않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LPGA 투어 선수들에 의하면 올해 청야니의 드라이버는 워낙 악성 슬라이스가 나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린 적중률도 56.9%로 155위, 역시 꼴찌다. 그린적중률 꼴찌면 말 그대로 꼴찌다. 투어에서 겨룰 수준이 안 된다.

평균 스코어는 74.43으로 146위다. 평균 타수 1위(69.28)인 리디아 고와는 라운드 당 5.15타 차다. 상금랭킹은 125위이며 벙커샷 파세이브율은 33%로 124위다.

골프에서 뛰어난 선수가 망가진 경우는 종종 나온다. LPGA 투어에선 망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뛰어난 스윙을 가졌던 김송희(28)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청야니처럼 압도적 1위였던 선수가 한창 나이(27)에 이렇게 무너진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청야니와 비교할 수 있는 예는 데이비드 듀발 정도다. 듀발은 1998년 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고 99년 초반에만 4승을 거뒀다. 99년 타이거 우즈와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러나 2001년 디 오픈 챔피언십 우승 후 급락했다.

듀발은 짙은 선글래스 뒤에 상처를 숨기고 다녔다. 형인 브렌트가 12세에 세상을 떠났다. 듀발이 9살 때 형을 살리기 위해 골수를 이식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부모의 이혼도 겪었다. 듀발의 피난처는 골프코스였다고 했다. 골프로 성공했지만 별로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냥 스포츠, 밥벌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1위를 할 때도 거의 웃지 않았다. 오히려 은퇴한 지금이 행복해 보인다.

청야니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한국 김치찌개 등도 좋아한다. 일부 한국 주니어 골퍼들처럼 다소 강하게 교육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야니는 선수로서 즉흥적인 것이나 무작위 같은 것은 없고 오직 목표와 훈련 뿐”이라고 했다. 다섯 살 때 골프를 시작했고 여덟 살 때 전담 코치를 뒀다. 아홉 살 때 일어난 박세리의 1998년 US오픈 우승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청야니의 아버지는 골프여왕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12살 때 미국으로 갔고 15세이던 2004년 미국 여자 퍼블릭 링크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미셸 위에게 승리했다. 미셸 위는 당시 남자 투어인 PGA 투어에서 68타를 치면서 최고 주가를 올리던 중이었다. 청야니의 아버지는 “딸은 상대가 강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청야니는 농구 코트 하프라인에서 슛을 넣을 수 있는 남자 같은 파워를 지닌 선수로 자랐다.

프로 데뷔 후 정교한 신지애 등에게 잠시 밀렸지만 결국 압도적인 파워로 1위가 됐다. 여자 선수들 중에서는 흔치 않게 동료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선수가 됐다. 워낙 압도적이라 오랫동안 정상에 머무를 것 같았는데 랭킹 1위 기간은 의외로 짧았다. 약 2년(109주) 간인데 후반기 1년은 우승을 못해 실제로는 그 보다 짧다.

정상의 운동선수로서 필요한 초인적인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정상에 있을 때 야구로 외도를 하기도 하고 여러 번 은퇴를 했다가 코트로 돌아왔다.

팀 스포츠는 감독이나 동료, 심판을 욕하면서 위안할 수 있지만 개인종목인 골프는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고 고독하다.

청야니는 랭킹 1위를 할 때 “1위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남자 골프 랭킹 1위를 했던 루크 도널드도, 로리 매킬로이도 “랭킹 1위라는 부담감이 없으면 경기가 더 편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바람대로 오랫동안 1위에 머물지 못했다. 최고가 되고 싶다면 수많은 경쟁자의 도전도, 미디어와 팬들의 주목도 견디고 즐겨야 한다.

청야니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기 골프를 하면서 압박감 속에서 경기하는 법을 가르치려 했다. 티잉그라운드에서는 절대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청야니는 요즘 압박감에 가장 심하게 흔들리고 티잉 그라운드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청야니의 아버지는 “딸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골프로 보내 친구가 없다. 친구가 있다면 모두 경쟁자였다”라고 후회했다.

1위는 어렵겠지만 청야니가 다시 LPGA 투어에서 경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돌아올 수는 있을 것이다. 완전히 망가지기엔 재능이 너무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지펴준 청야니 마음속 불꽃은 의외로 빨리 사라진 듯하다. 청야니 아버지의 골프여왕 프로젝트는 성공하긴 했지만 유효기간이 매우 짧았다. 그래서 청야니의 몰락과 함께 강력한 골프 대디도 함께 빛을 잃는 듯하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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