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개장한 미국 샤론의 불 공원 덤덤 코스 [사진=불 공원]
골프장에 가서 골프 라운드를 하려면 의무적으로 그린피를 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안내도 되는 골프장이 세계에 단 한 곳 있다.
코스 상태와 상관없이 주중보다 주말 그린피는 시간대 별로 다르다. 한국 수도권에는 주말에는 30만원 넘는 코스도 많고, 스코틀랜드의 해안가 럭셔리 코스 트럼프 턴베리는 내년 6월 성수기에 1천파운드(177만원)까지 올린다고 한다. 세계 절반의 골프장이 있는 미국에는 그린피 몇 만원 대의 저렴한 퍼블릭 코스도 많다.
펜실베이니아주 샤론 허미타지의 불(Buhl)공원 골프장은 그린피를 받지 않는 세계 유일의 9홀 골프장이다. 그린과 페어웨이, 러프 구분이 뚜렷해 여느 골프장과 같지만 이곳에서 골프 하려면 클럽만 있으면 공짜 라운드 가능하다. 카트피도 없지만 라운드 전에 사인을 해야 하고 기부는 환영한다. 하루 종일 쳐도 나가라 하지 않는다.
골프장 인근에 살며 공짜 라운드를 하며 자란 토박이 톰 로스코스는 현재는 시설 지배인이 됐고, 애덤 스콧은 골프 프로가 됐다. 로스코스 지배인은 “어렸을 때는 뒷마당에 무료 코스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 수 없었다”면서 “돌이켜보면 그런 행운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덤덤코스에서는 주니어 골프 스쿨이 활발하다 [사진=불 공원]
이 코스는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지만 1800년대말 피츠버그 북쪽 70마일 떨어진 샤론에 살며 철강 회사로 부를 쌓은 실업가 프랭크 불(Frank H. Buhl)이 만든 공원에서 유래한다. 1914년에 개장한 9홀 코스는 파34에 전장 2300야드로 짧은 편이지만 중요한 건 무료 골프 철학을 100년 넘게 유지한다는 점이다.
불과 아내 줄리아 부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저택에 살았지만 동시에 지역 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여긴 독지가였다. 지역 최초의 병원과 공동묘지, 도서관, 성공회 교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고 지역 사회에 기부했다. 건물 뿐만 아니라 하이킹 코스, 호수에 9홀 코스를 포함한 공원까지 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인들은 이 공짜 코스를 불 파크 골프장 대신 덤덤(Dum dum) 코스라고 불렀다. 폄하하는 이름이 아니라 애정의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불 부부는 코스와 공원을 시에 기부하고 세상을 떴고 무료 운영의 원칙을 지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 맘껏 라운드하게 해준 이 코스에 보답하고 싶어 자원해 직원이 됐다.
하지만 그린피 없는 코스를 유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린과 페어웨이 잔디를 깎거나 관리하고 비료와 물도 주어야 코스가 유지된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대지 않으면 코스는 황폐화한다. 2015년부터 공원 책임자로 일하는 로스코스는 연간 65만 달러의 운영비를 충당할 방법을 연구하던 끝에 연습 시설을 만들었다.
그린피에 카트피도 공짜인 덤덤코스는 자율 셀프 골프가 기본이다 [사진=불 공원]
스콧이 관리하는 드라이빙 레인지는 박스당 7, 10달러의 비용을 받았고, 레슨 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트랙맨 골프 시뮬레이터를 사서 시간당 20~40달러에 이용하도록 하면서 골퍼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동시에 단체 행사를 유치했다. 어떤 이들도 공짜로 시설을 쓰겠다는 곳은 없었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했다.
그러자 코스는 제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일주일에 한 번 깎던 잔디는 두 번으로 늘었다. 부모들은 어린이들을 데려오면서 골프 스쿨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무료 라운드라는 이유로 코스가 엉망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잘 유지되려면 더 많은 부분에서 사업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해 25만 달러의 적자를 내며 시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던 이 코스는 이제 손익분기점에 가까워졌다. 로스코스와 스콧은 골프 클리닉과 기타 서비스를 추가해 수익을 창출하는 날을 꿈꾼다. 특히 어린이들이 찾아오는 골프 스쿨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두 사람이 청소년기에 비용 부담없이 라운드하면서 꿈을 키우던 모습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골프장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코로나19 기간에 들어온 젊은 세대가 골프를 접는다고 한다. 시니어층에서는 파크 골프로 넘어가는 인구가 급격하다. 그럼에도 골프장 그린피는 도통 내려올 줄 모르고 3인 이상 의무적으로 라운드하거나 객단가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올해는 잔디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그린피는 내려갈 기미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