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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명칭 골프장의 사회사

남화영 기자2024.07.20 오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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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트룬의 벽에 있는 옛 로고와 현재의 로열 왕관이 들어간 로고

전 세계에 로열(Roya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골프장이 적지 않다.

올해로 디오픈을 10번째 개최하고 있는 골프장은 로열트룬이다. 원래 이름은 1878년에 조성된 트룬 링크스였으나, 골프장 개장 100주년을 맞은 1978년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후원자(patron)’가 되기로 하면서 ‘로열’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졌다.

지난 5월 찰스 3세 영국왕이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에 위치한 로열&에인션트(R&A)골프클럽의 후원자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마틴 슬럼버스 R&A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국왕 폐하에게서 후원을 수락했다는 통지를 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22년 9월8일 즉위한 국왕이 2년여 만에 후원자가 된다는 것 자체를 크게 평가한 것이다.

골프장 회원 중에 왕족(앤 공주)도 있고, 이미 이름에 로열이 들어 있었으나 국왕이 새롭게 인정했다는 자체가 뉴스였다. 슬럼버스는 ‘여왕 폐하의 70년 후원은 회원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이었다’면서 ‘버킹엄궁으로부터 국왕 폐하의 패트론 수락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로열퍼스골핑소사이어티와 R&A골프클럽 로고

R&A에도 로열이 들어 있다
R&A는 퍼블릭 골프장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앞마당에 둔 골프 동호회인 세인트 앤드루스 골퍼들 모임(Society of St Andrews Golfers)으로 1754년에 설립됐다. 이후 클럽은 빠르게 지역 사회의 중심이 됐고, 80년 뒤인 1834년에 영국왕 윌리엄 4세는 ‘로열’을 하사하면서 R&A골프클럽이 됐다.

윌리엄 4세는 이보다 한 해 전에 스코틀랜드 퍼스의 골프 모임에 이미 로열을 하사해 ‘로열퍼스골핑소사이어티’가 나왔다. 클럽의 6번째 캡틴인 킨나드 공이 왕실과 친했던 까닭에 개장(1824)한 지 9년째인 1833년에 ‘로열’을 수여받았다. 사람들의 모임인 이 클럽은 퍼블릭 코스인 노스인치를 홈 코스로 두고 다른 곳에서도 모임을 연다.

사상 두 번째로 로열을 받은 R&A골프클럽은 골프장이면서 동시에 미국골프협회(USGA)와 더불어 세계 골프의 규칙과 규정을 제정하는 기구의 역할을 담당했다. 다만 처리할 사무가 늘다보니 지난 2004년 클럽 창립 250주년을 맞아 골프룰, 디오픈 및 대회 운영, 해외 골프교류의 게임 개발에 대한 책임을 R&A에 이관시켰다.

말하자면 R&A를 분가시킨 R&A골프클럽은 전 세계에 2,400명이 넘는 회원제 클럽은 아직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세계 골프계에 영향력 있는 정재계 인사들을 회원으로 초빙하면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2014년에는 전체 회원투표를 통해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뒤로는 앤 공주, 안니카 소렌스탐 등의 7명을 회원으로 받았다.

디오픈 개최지 로열 리버풀과 로열 세인트조지스 로고

디오픈 코스중 7곳이 로열
152주년을 맞은 디오픈을 개최한 골프장은 총 14곳인데 현재는 9곳만 순회지로 남아 있다. R&A골프클럽과 로열트룬 외에도 로열세인트조지스, 로열리버풀, 로열리담&세인트앤스, 로열버크데일, 로열포트러시까지 7개 코스 이름에 로열이 들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로열’이란 명칭에는 대영제국이 세계로 식민지를 확장하던 시대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 국내외로 신개척지에 들어간 영국의 해군이나 선교사들이 현지 우두머리에게 영국 국왕의 은덕을 하사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로열이란 이름이 붙는 전세계 골프장 100여곳 중에 70곳은 영국왕이 수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열이 붙는 골프장의 로고들은 하나같이 왕관이 표시되어 있다. 로열트룬은 로열 명칭을 1978년에 여왕에게 하사받으면서 왕관이 로고에 추가되었다. 옛날 로고에는 없던 왕관이 오늘날에는 새겨져 있는 게 그 이유다.

물론 스페인, 벨기에, 네팔, 네덜란드 또는 스웨덴도 군주제를 가지고 있고 비슷한 맥락에서 그들도 로열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했다. 영국의 스콧 맥퍼슨은 저서 <영국왕실이 부여하는 골프의 로열클럽 1833~2013>에서 로열 칭호를 영국왕에 의해 뛰어난 기관, 오래되고 재정적 지위를 확보한 국가나 자선, 과학적 대상에 헌신하는 곳으로 불렀다고 정의했다.

로열포트러시(왼쪽), 로열몬트리올, 로열맬버른(아래)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 로열 전성기
전 세계 골프장에 가장 많은 ‘로열’이 붙은 게 빅토리아 여왕 시절(1837~1901년)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 아시아 각국에 영연방을 구축한 시절이다. 연방의 총독들이 현지에 골프장을 짓고 이를 통해 지역 상류층과의 사교와 통치의 인맥을 구축한 시절이다.

로열리버풀은 1869년 개장하고 2년 지난 1871년에 로열 명칭을 받았다. 북아일랜드에서 1888년에 개장한 로열포트러시는 4년 뒤에 호칭을 받았다. 올해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하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1873년 개장) 코스인 캐나다 로열몬트리올도 개장 11년 뒤인 1884년에 로열을 붙였다.

프레지던츠컵을 4번 개최한 호주의 로열멜버른GC는 1895년에, 시드니의 로열시드니GC는 1897년에 각각 로열을 받았다. 반면 1889년에 설립한 로열홍콩GC도 1897년에 로열시드니와 함께 로열을 받았으나, 1996년 홍콩 영토가 중국으로 반환되자마자 ‘로열’이 빠지고 홍콩GC가 됐다. 로열은 영국왕이 부여한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골프를 즐겼던 에드워드 8세는 1887년 개장한 로열세인트조지스를 1902년에, 1892년 개장한 로열싱크포츠를 1910년에 로열을 수여한다. 이후 조지 5세가 로열리덤&세인트앤스를 1926년, 조지 6세가 1951년에 로열버크데일 후원자가 되면서 로열을 쓰게 했다. 이처럼 골프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로열이 명예와 모범 골프장의 모델이 됐다.

레알발데라마와 레알 소토그란데 로고

유럽 군주제 국가의 로열 명칭
군주제를 시행하는 다른 유럽 나라들도 왕실에서 수여하는 로열 개념이 많다. 스페인은 스페인어 레알(Real)을 부여한 골프장이 25곳에 육박한다. 그중 절반 이상이 내셔널타이틀 골프대회 스페인오픈을 개최했다. 라이더컵을 개최한 레알 클럽 발데라마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2014년에 ‘레알’을 수여했다.

그밖에 벨기에와 네덜란드, 슬로베니아, 네팔, 태국 등도 로열 명칭을 가진 골프장이 있다. 다만 몇몇 골프장은 사정이 다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로열GC는 왕실과 관련이 없다. 비슷한 이름의 로열코펜하겐GC은 골프장이 속한 국립공원은 17세기 후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5세 국왕이 설립했고, 프레데릭 3세의 성이 16번 홀 근처에 있다는 정도다.

로열이란 이름을 가졌다고 모두 왕실과 관련 있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의 로얄타라 골프코스(GC)는 고대 아일랜드의 왕들이 거주했던 타라 언덕 근처에 있다고 그 이름이 나왔다. 인도의 로얄스프링GC 는 무굴 황제들이 과거에 사용했던 4개의 천연 온천이 있다고 지어졌다. 심지어 국내에도 고양의 레이크우드 골프장 이름이 예전에는 로얄CC였다.

* 남화영 기자는 국민대학교 골프산업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골프, 나를 위한 지식플러스>,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1>(류석무 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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