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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칼럼-홍순상의 외모

성호준 기자2015.11.10 오전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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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상의 모델 같은 외모에 속으면 안된다. 홍순상은 돌쇠형 선수다. [KPGA 민수용]

몇 년 전 외모가 좋은 선수는 골프를 더 잘 한다는 논문이 나왔다. 똑같은 성적을 내도 외모가 수려하면 스폰서 계약 등이 유리해 수입이 더 많다는 게 논거였다. 잘 생긴 선수는 외모가 평범한 선수 보다 경제학 용어로 ‘한계 수입’이 높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잘 생긴 선수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방해물들이 더 많다. 데이비드 베컴은 외모 덕도 봤지만 얼굴 탓에 고생도 했다. 얼마나 유혹이 많았겠는가. 그의 얼굴이 평범했다면 셀레브리티로서는 몰라도 선수로서는 좀 더 탁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도 할 수 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은 얼굴로 점수를 딸 수 있지만 스포츠 선수는 외모로 이길 수 없다.

2006년 신한동해 오픈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당시 최고 스타인 최경주가 아니라 다른 조에 갤러리가 더 많았다. 홍순상이라는 무명 선수를 보러 온 여성팬들이었다. 제대한지 얼마 안 되어 골프 기자들도 모르는 그를 찾아온 팬들이었다. 그 정도로 홍순상은 멋졌다.

시즌 최종전이 열린 충남 태안 현대 더링스 골프장에서 만난 홍순상은 “잘 생긴 건 절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유혹이 많긴 했다”고 웃었다. “여자 친구를 사귀기야 했죠. 결혼도 해야 하니까. 그런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골프라는 생각을 버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 때문이란다. 홍순상은 “어머니가 신문을 보시다 좋은 내용이 있으면 스크랩해 주셨다. 제대한 직후에 어머니는 남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또 성공하고 나서도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글을 주셨다. 그 내용에 공감하고 항상 유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모 때문에 그의 이미지는 약간 뺀질뺀질해 보인다. 그의 얼굴에 홀리면 안된다. 실제는 반대다. 가장 저돌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이른바 ‘돌쇠’가 홍순상이다.

투어 프로들은 홍순상을 약간 4차원으로 생각한다. TV 방송이나 연예인에 대한 농담 같은 걸 잘 모르고 엉뚱하게 골프 얘기만 해서다. 또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해야 하는데 홍순상은 연습만 한다고 해서다.

하도 오래 연습을 하기 때문에 이런 말도 나왔다. “연습 그린에 홍순상이 있으면 퍼트 연습을 할 수 있는 날씨이고 홍순상이 없으면 도저히 퍼트를 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 연습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홍순상은 한다. 기자는 눈이 오는데 혼자서 퍼트 연습을 하고 있는 홍순상을 본 적이 있다. 경기장에서 가장 늦게 철수하는 방송 중계팀은 왜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홍순상이 퍼트 연습을 하는지 의아해 한다.

홍순상은 “다른 선수들도 말은 논다고 하면서도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연습하더라. 특히 후배 이태희는 연습을 아주 많이 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고 했다. 이태희도 연습벌레다. 식사를 할 때 무릎 사이에 짐볼 같은 것을 낀다. 밥 먹으면서도 다리 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홍순상에게는 안 된다는 것이 투어 선수들의 생각이다.

그는 훈련 중독자인가. 오죽 연습을 많이 하면 투어에선 “홍순상이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 오히려 성적이 안 난다”는 얘기도 있다. 홍순상은 “나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혹시 그런가 해서 일부러 연습을 안 해봤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실컷 놀기만 하고 경기에 나가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습 안 해도 성적 좋은 선수들이 더러 있다. 메이저 11승을 한 월터 헤이건은 밤새 술집에서 놀다 경기장으로 직행하고도 우승하곤 했다. 호주의 로버트 앨런비는 프레지던츠컵에서 앤서니 김에게 지고는 “새벽 4시에 술 냄새를 풍기고 들어온 선수에게 패했다”고 한탄했다.

홍순상의 연습 안하기 실험은 실패했다. 그는 “연습을 안 하고 대회에 나가보니 성적이 완전 형편없었죠. 그래서 나는 무조건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도 자신만큼 열심히 하지 않고도 잘 된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한다. “그냥 열심히 연습하는 수밖에는 없잖아요. 타고 난 게 이런데.”

그는 “외모가 아니라 골프 잘 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했다. 갤러리나 카메라가 자신에게 쏠려 경기 중 화를 풀어야 할 때 풀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고 한다. 외모가 장점이 된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는 것이다.

홍순상은 올해 서른넷이다. 2년 넘게 우승을 못했다. 오랫동안 함께 한 스폰서가 올해 계약을 끊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다. 올해 상금 랭킹은 49위로 밀렸다. 지난주까지 60위 밖에 있었는데 마지막 대회에서 공동 5등을 해서 그나마 올린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투어, 유럽 투어, 미국 투어에 가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조금 늦지 않았냐고 슬쩍 돌려 말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올해 연습을 좀 덜 해서 성적이 안 난 거에요. 아직 젊고 이제 시작인데요 뭐.”

홍순상은 외모라는 굴레 때문에 오히려 힘든 조건이었지만 가장 열심히 일했다. 꿈도 흔들림이 없다. 이런 선수가 성공한다면 그게 정의라고 믿는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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