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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스마일탱크,모리야 쭈타누깐

김두용 기자2018.08.15 오전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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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전까지 모리야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동생 에리야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휴젤-JTBC LA 오픈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상급 골퍼 대열에 합류했다. ‘새가슴’이라는 오명도 씻어냈다.[사진 권상일]

외모를 보면 체구가 작아 동생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면 왜 언니인지 알 수 있다.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골프와 인생에 대해 조근조근 말하는 모습에서 깊은 진중함이 느껴진다. 모리야 쭈타누깐의 이야기다.

자매의 맹활약은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다. 비슷한 외모를 가진 자매의 활약을 지켜볼 때면 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마치 가족처럼 ‘자매가 함께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응원하는 팬들이 많아졌다.

모리야 쭈타누깐은 팬들이 더욱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응원했던 선수다. 동생 에리야 쭈타누깐보다 LPGA투어에 먼저 데뷔했지만 우승이 한참 늦었기 때문이다. 모리야는 2013년 LPGA투어에 데뷔해 신인왕까지 차지했지만 오랫동안 우승이 없었다. 그사이 동생 에리야가 2016년 5승을 챙기며 세계 최고의 골퍼로 성장했다. 태국 최초의 LPGA 우승과 메이저 대회 우승, 세계 랭킹 1위 같은 타이틀은 모두 에리야의 차지였다.

올 시즌 전까지 모리야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동생 에리야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휴젤-JTBC LA 오픈에서 마침내 마수걸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정상급 골퍼 대열에 합류했다. ‘새가슴’이라는 오명도 씻어냈다. 이번 인터뷰의 초점은 모리야에 맞춰졌다. 탱크처럼 묵직하게 전진하며 자신의 골프를 펼치고 있는 모리야에 대한 인물탐구 이야기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 이겨낸 뚝심

코스 안팎에서 만난 모리야에게는 진중함이 배어 있었다. 골프 게임을 풀어나갈 때나 이야기를 할 때도 항상 차분함이 깔려 있었다. 활발한 동생과는 이미지가 정반대다. 예상한 것처럼 모리야는 진지한 답변을 이어나갔다. 영어도 에리야보다 능숙했고, 보다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 잘난 동생’ 옆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은 대단한 뚝심의 소유자였다.

‘오늘 하루가 어땠나요’라는 첫 질문을 건네자 모리야는 “쉽지 않은 경기였고, 인내력이 필요했다. 매 순간 좋은 상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첫 답변부터 진지함이 묻어났다. 미리 질문지를 준 것도 아닌데 논리적으로 잘 정돈된 답변들이 돌아왔다. 결코 서두르거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모리야는 이런 차분한 성격으로 LPGA투어에서 마침내 꽃을 피우고 있다. 올해 32경기 중 15경기가 끝난 시점에서 그의 기록은 놀랍다. 우승 1회를 포함해 톱10 6번을 기록했다. 7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여 상금 순위 3위에 올라 있고, 레이스 투 CME 글러브 부문에서도 2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 4위에, 평균 타수도 7위(70.16타)에 자리했다.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모리야는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는 “최고의 해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LPGA투어에서 목표로 삼았던 첫 우승도 했다. 하지만 매 경기마다 계속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우승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계속 나아가고 싶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즐기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목표를 향해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156번째 경기에서 나왔던 감격적인 첫 승 순간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휴젤-JTBC LA 오픈에서 12언더파를 기록해 고진영 등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마지막 챔피언 퍼트 순간에 대한 기분을 물었는데 ‘깜짝 고백’이 돌아왔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3홀을 남겨두고 대회장에서 나오고 싶었다. 압박감이 심하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그대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첫 승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리야는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좋은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경기 마지막까지 집중하려 노력했다”며 차분한 답변을 이어나갔다. 첫 우승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모리야는 “대회에서 우승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늘 궁금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대단히 특별한 느낌은 없다. 벅차서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코치의 조언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모리야는 “휴젤-JTBC LA오픈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코치님께 전화해서 말했다. ‘최종 라운드 결과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그런데 코치님은 ‘결과가 어떻든 다들 절 변함없이 사랑할 거다’고 말했다. 그래서 계속 즐기면서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우승 후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야 했던 그는 축하 파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승 감흥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그는 “첫 우승을 한 날이니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실력을 증명했다는 뿌듯함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압박감에서 벗어나 후련했고, 지금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라고 옅은 미소를 보였다.

소렌스탐 넘어 LPGA 최강 자매 도전장

앞서 우승 순간에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자신의 일처럼 펑펑 눈물을 쏟아낸 에리야에 가렸지만 모리야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자매가 함께 눈물을 흘려 팬들의 마음도 뭉클해진 순간이었다. 에리야가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우승한 선수가 도대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모리야는 당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동생이 나를 안으면서 ‘잘했다’고 말해줬다. 나도 동생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똑같이 감정이 격해진다. 우린 정말 가깝다. 동생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니 감정이입을 했을 거다. 그래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동생이 너무 울어서 내가 울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난 동생이 이해된다. 동생도 선수 생활을 하고 경기를 치르면서 대회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 아니까. 그렇게 감정이 격해졌던 거다.”

과연 모리야에게 동생은 어떤 존재일까. 옆에서 붙어 지내며 함께 골프를 했기 때문에 둘의 친밀도는 상상 이상이다. “에리야는 전부다. 부모님도 계시지만 동생은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다. 나를 즐겁게 해주고 가끔 화나게도 하지만 내 전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리야와 에리야의 체격과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첫 승에 방점을 찍기까지 겪어야 했던 고충은 비슷했다. 모리야도 우승을 목전에 두고 뒷심 부족으로 우승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새가슴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모리야는 언니인 만큼 조금 더 차분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모리야는 “나도 우승을 아깝게 놓쳤다는 걸 알고 다들 그렇게 얘기들을 했다. 사람들 말에 동요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제가 믿는 대로 계속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선수마다 때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때를 기다리며 그저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모리야-에리야 쭈타누깐 자매는 안니카-샬로타 소렌스탐 이후 18년 만에 자매 우승 기록을 완성했다. 자매 우승은 LPGA투어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다. 쭈타누깐 자매는 LPGA투어 역사상 최강 자매를 꿈꾸고 있다. 안니카 소렌스탐이 72승을 수확했지만 샬로타 소렌스탐은 1승만 챙겼다. 만약 모리야가 지금의 페이스대로 성장해 3승 이상을 챙긴다면 쭈타누깐 자매가 최강 자매로 인정받을 것이다. 동생 에리야는 벌써 10승을 올리고 있다.

인생의 절반, 또 다른 목표 설정

모리야에게 골프의 의미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롱런을 위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 전부였지만 더 이상 골프가 인생의 전부를 뜻하진 않는다. 모리야는 “한때 골프는 내 전부였다. 지금은 내 인생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다”며 “10대 때는 골프가 정말 대단한 의미였다. 지금도 대단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물론 연습하거나 경기할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 삶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리야는 골프 외에 자신의 삶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자로서 결혼을 생각할 수 있고, 다른 삶을 그려볼 수도 있다. 우승 후 마음의 여유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는 “골프 외에 다른 걸 즐기기도 한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골프 칠 때는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것도 즐기며 삶을 누리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모리야는 요리를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투어를 함께 다니는 엄마, 동생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시끌벅적하게 먹는다. 모리야는 “태국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콕 찍는 건 어렵다.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우승 후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항상 우승이라는 목표가 분명했는데 이제 우승을 했으니 다시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때다. 그는 “한 번 우승했어도 경기력을 계속 향상하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실력을 증명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유도 다 있다. 기술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그는 “전반적인 경기력을 향상하려고 계속 노력해왔다. 경기 때 더 좋은 샷을 날리고 더 정교한 퍼트를 하고 싶다. 정신력도 전보다는 강해진 것 같다. 모든 부분이 같이 좋아져야 성장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고 싶은 마음도 당연했다. 그는 “우승할 수만 있다면 어느 대회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US여자오픈이다. 코스가 가장 까다롭고 매년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답했다. 모리야가 가장 우승하고 싶은 대회를 올해 동생 에리야가 먼저 석권했다. 만약 자매가 동반으로 US오픈을 정복한다면 역사적인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모리야의 가장 큰 매력은 밝은 미소다. LPGA투어 캐디들 사이에서 모리야의 미소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웃는 얼굴이 예쁜 모리야는 어떤 상황에서 웃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우승 후에도 ‘백만 불짜리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특별한 수식어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리야는 “내 이름 그대로 ‘모’나 ‘모리야’로 불리고 싶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을 정말 좋아한다”고 환하게 웃었다.

진중하고 묵직한 모리야의 인성은 변함이 없다. 다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탱크처럼 다시 전진할 때다. 모리야는 “목표는 항상 변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목표도 또 다른 우승이다. 한 번 우승했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profile
생년월일 : 1994년 7월 28일
신장 : 155cm
국적 : 태국
LPGA 데뷔 : 2013년
LPGA 우승 : 1회
특이사항 : 동생 에리야 쭈타누깐과 역대 두 번째 LPGA 자매 우승
주요경력 : LPGA 신인왕(2013년), 인터내셔널 크라운 대표(2014, 2016년), LPGA 버디 퀸(2017년), 휴젤-JTBC LA오픈 우승(2018년)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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