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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쉬지 않고 달렸다 '지은희의 길'

이은경 기자2018.01.10 오전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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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신중혁, 의상협찬 엘르골프,엘르스포츠]

2017년 10월 22일. 대만 타이베이 미라마르 컨트리클럽. LPGA투어 스윙잉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 마지막 날, 지은희는 2위 리디아 고를 6타 차로 제치고 압도적인 우승을 했다. 무려 8년 만의 우승. LPGA투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하는 게 이제는 별다른 뉴스가 아닌 시대지만, 지은희의 우승 소식은 팬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전했다.

1986년생, 만 31세에 우승을 추가한 지은희는 오랜 기다림 끝에 우승 가뭄을 털어냈다. 30대 나이의 한국 선수가 LPGA투어에서 우승한 건 구옥희, 박세리에 이어 지은희가 역대 세 번째에 불과하다.

감격의 우승을 하고 두 달여가 흘렀지만, 지난 해 12월 만난 지은희는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주변의 우승 축하 인사를 가까이에서 제대로 다시 받느라 바빴다. “한국에 들어와서 사람들 만나느라 정말 정신이 없어요. 가평(지은희는 가평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다)에는 그동안 도와주셨던 분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한자리에 모시고 파티도 한 번 했어요.” 오랜만에 만난 지은희의 표정에 여유가 넘쳤다.

▶ 우승 비하인드… 사실은 잠 설쳐

지은희는 스윙잉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와이어투와이어로 우승했다. 마지막 4라운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인 7언더파를 기록했다. 기록만 봐서는 손쉬운 우승 같지만, 정작 본인은 불안함에 그 주 내내 잠을 설쳤다고 한다.

지은희는 “대회가 있던 주에 내내 잠을 잘 못 잤어요. 2위 리디아 고가 워낙 잘하는 선수이기도 했고, 또 오랫동안 우승을 못 하다 보니까 경험이 모자라 눈앞에서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솔직히 들었고요”라고 했다. 그러나 몸은 다르게 반응했다. 퍼팅도, 샷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았고, 플레이 내내 몸에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지은희는 “우승하고 동료들이 다 같이 나와서 물 뿌리며 축하해주는데 약간 울컥했어요”라고 회상했다. 당시 라운드를 마치고 휴대폰 전원을 켰고, 그 상태로 가방에 넣어둔 채 우승 세리머니와 시상식을 했는데, 마치고 나니 메시지 200여 개가 들어와 있었다고. “그날 저녁엔 그보다 더 많은 메시지가 왔죠.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가까운 사람들만 기뻐한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전해진 지은희의 우승 소식에 팬들도 기뻐했다. 본지 설문에 따르면, 2017년 재기에 성공한 선수 중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지은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지은희는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도 궁금해서 일일이 다 읽어봤는데, 죄다 좋은 이야기만 있던데요”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 ‘슬럼프’라는 말은 사절

지은희는 큐스쿨을 거쳐 2007년부터 LPGA투어에서 활동했다. 2008년 웨그먼스 LPGA에서 첫 승을 올렸고, 2009년에는 메이저인 US여자오픈을 거머쥐었다. 이전 KLPGA투어에서도 두 시즌간 좋은 성적을 냈었기에 지은희가 미국에서도 만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그는 2010 시즌 상금 56위로 프로 13시즌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6 시즌까지 우승 없이 상금 순위 30~40위권을 기록했다. 비록 우승이 없었다고 해도 10년이 넘도록 LPGA투어에서 시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최정상급 선수가 넘치는 한국 여자골프에서는 그것만으로 ‘잘했다’는 칭찬을 듣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모든 골프 선수가 타이거 우즈도 아닌데 매번 우승할 수 없고, LPGA 시드 유지도 전쟁 같은 일이라는 걸 팬이나 미디어가 잘 몰라주지 않나”라는 질문에 지은희는 “아무래도 그렇죠”라며 공감하는 눈빛이었다.

지은희는 “박성현이 2017 시즌 미국에 진출하고 초기에 꾸준히 톱10에 들어가며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일부에서는 ‘한국에선 우승을 쓸어 담더니 미국 가니까 못 하네’라고 말하더라구요. 선수들 사이에서는 어려움도 거의 없이 빠르게 적응하는 박성현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저 역시 몇 년간 우승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진 선수 취급 받는 건 분명 섭섭했어요.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한 번 우승을 하면 더 크게 환호하고 응원해주시니까 그런 부분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꽤 오랜 기간 ‘우승 가뭄’을 겪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은희는 “2009 시즌 이후 매년 스윙 교정을 했는데, 그게 2010년 즈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연습할 때는 분명 잘 됐는데 실전에서는 안 나오니 답답하고 미치겠더라고요. 2010년에는 상금 순위가 떨어져서 가을에 열리는 아시안 스윙 대회에 나가지 못했어요. 그때는 자신감이 뚝 떨어졌지요. 한때 힘들기도 했지만, 결국 롱런할 수 있는 스윙으로 바꿔 간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 차곡차곡 쌓아 올린 그녀의 길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던 스윙 교정을 지은희는 2009년 이후 7~8년 동안 꾸준히 했다. 또한 프로 골퍼로서는 드물게 드라이버를 제외한 클럽 사용 계약도 따로 맺지 않고 있다. 샷에 있어서만큼은 작은 흠결이나 제약도 못 견뎌 하는 완벽주의자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말에 지은희는 싱긋 웃으면서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클럽 계약 금액이 그리 크지 않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용품 계약에 묶이는 것보다 클럽 종류별로 일일이 테스트해보고, 나에게 딱 맞는 걸 찾는 게 좋거든요. 그렇게 해서 상금을 더 많이 번다면 그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라고 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지은희의 꾸준하고 끈질긴 면모를 보여주는 단면일지 모른다. 지은희는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을 보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세리 키즈’다. 국가대표 수상스키팀 감독이던 아버지가 딸에게는 ‘비전이 있는 종목을 시키고 싶어서’ 골프를 적극 권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 농구, 육상 등 만능 스포츠맨이던 지은희는 골프에 금세 빠져들었고, 당시만 해도 가평에는 골프연습장이 전무해서 연습을 위해 춘천까지 오가야 했다. 가평에 있을 때는 아버지가 청평호수에 부표를 띄워놓으면 그걸 아이언으로 맞히는 훈련을 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넉넉하지 않은 훈련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지은희는 상비군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때 곧바로 대표팀에 들어갔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18세에 프로로 턴했다. 2004년 9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만 13년 넘게 달려왔다.

지은희는 “어린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요즘 친구들은 하다가 잘 안 되면 금방 다른 길을 찾곤 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골프가 좋다면 지금 힘들어도 좀 더 견디고 이겨내라고요. 그렇게 견디면 꼭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요”라며 “미국 생활, 외롭고 힘들죠. 특히 안 풀릴 때는 더 외로워요. 하지만 한 번 성적이 잘 나오면 싹 다 잊혀져요. 그 맛에 못 그만두는 것 같아요”라고 웃었다.

박세리가 세운 한국 선수 LPGA투어 최고령 우승은 만 33세(2010년 벨마이크로 클래식)다. 일본에서는 강수연이 41세의 나이로 우승 기록(2017년 리조트 트러스트 레이디스)을 세웠다. 지은희에게 “강수연의 41세 우승 기록을 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묻자, 한참을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마흔까지 뛸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뛰고 그만두겠다는 한계를 정해둔 건 아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강수연 프로님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지은희는 먼 미래의 장기 목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젠가 은퇴하고 1년 정도 쉬면 그때 또 다른 목표가 생각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대신 2018년 목표는 뚜렷했다. “우승을 더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왕 LPGA투어에서 뛰는 건데 상금왕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습니다.” 지은희는 이렇게 앞만 보고 묵묵히 뛰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이은경 기자 eunkyonglee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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