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회원이 지난 24일 KLPGA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협회와 임원들에 대한 소신 발언을 했다. [KLPGA 홈페이지 캡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한 회원의 글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4일 KLPGA 대의원인 김경희 회원은 ‘골프와 협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지난 19일 정기 이사회에서 통과된 최진하 경기위원장의 재선임 건에 대한 민심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지난 10월 KB금융 스타챔피언십 파행 운영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진하 경기위원장이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집행부의 ‘꼼수’로 인해 2년 연임이 결정된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한 통탄이이었다.
김 회원은 “골프를 사랑하는 주변사람으로부터 우리협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너무 들려 화가 나서 한 글자 써봅니다”로 운을 뗐다. 이어 “각 임원님들이 선거 때 우리 회원들에게 약속하셨던 공약을 잘 이행하고 계신지요!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릴 때에는 누가 봐도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KB금융 스타챔피언십 1라운드 취소사태에 대해 본인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한 최진하 전 경기위원장을 이사회에서 재선임 결정을 한 임원들이나, 사퇴 선언을 번복한 최진하 전 경기위원장이나 참!!!”이라며 “공식기자회견에서 본인 스스로 사퇴를 한 최 위원장에게 협회가 멀리건을 주고, 그것을 바로 받은 최 위원장이 과연 경기위원장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네요”라고 비난의 날을 세웠다.
골프는 규칙과 매너를 지키는 게 생명인 종목이다. 최 위원장은 KB금융 스타챔피언십 때 모호했던 그린과 프린지 경계 구분에 대해 차별적인 판정으로 1라운드 전면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다. 미숙한 경기운영으로 메이저 대회가 1라운드 무효에 이어 54홀로 축소된 사태는 해외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다. 하지만 KLPGA는 최 위원장의 사직서도 수리하지 않는 등 면죄부를 주고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이런 ‘막장 드라마’에 대해 김 회원은 “그날 대회에서 OB를 낸 선수도 아마추어 같이 멀리건 받고 그러면 되겠네요”라며 비꼬았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된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자 “행동을 하셨을 때에는 책임도 뒤따르는데 우리협회는 책임지시는 분이 한 분도 없는 게 되버렸네요”라며 일갈을 가했다.
대회의 파행 운영도 그렇지만 이후 사태 수습 과정에 더욱 실망감을 표출했다. 그는 “KB금융 스타챔피언십 1라운드 취소사태보다 지금의 우리협회 경기위원장 재선임 결정이 더 걱정스럽네요. 자리에 대한 무게만큼 책임감도 무겁게 느끼셨으면 하네요”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번 재선임 결정으로 최 위원장의 사직서는 결국 여론 환기용에 불과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김 회원은 “그럼 그동안 급한 불만 끄려고 임시방편으로 쇼 하신건가요?”라고 반문했다.
인기에 편승해 외형만 불어났을 뿐 행정과 운영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집행부에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았다. “임원여러분!!!!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세요! 팬과 회원들도 눈과 귀가 있습니다. 생각도 있고요. 청와대로 향했던 촛불이 우리협회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현명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김경희 회원의 글은 최근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와 댓글수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경희 회원의 소신 발언’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집행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다른 회원들의 의견도 줄을 이었다. 아이디 jungsun303은 “프로협회가 아마추어도 하지 않는 행동을 하니 참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앞날이 걱정스럽습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KLPGA를 즐겨보는 팬이라고 밝힌 아이디 beyondme73은 “사퇴한 위원장이 다시 재선임된 건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KLPGA 회원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협회의 작태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크게 다르게 보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동안 KLPGA 집행부의 독단적인 행보들로 애꿎은 선수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 2016년 구자용 전 KLPGA 회장 사퇴 후 공석이었던 수장직을 대행했던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협회를 장악한 뒤 갖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춘자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이사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김상열 회장과 강춘자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협회의 주인인 회원과 선수들의 의견을 배제한 일방통행식 행정과 강압적인 운영으로 KLPGA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촛불 민심’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면 KLPGA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KLPGA 파행 일지, ‘안하무인’ 집행부
▶2016년 2월 : ‘은밀한 베트남 프로암’ 사태 논란, 강춘자 수석부회장 프로암 참가자 개인적으로 섭외 ‘박연차 게이트’ 장본인과도 연관
▶2016년 3월 : KLPGA 정기총회 강춘자 수석부회장 장기집권 기틀, 정관 바꿔 임원 임기 연장 편법
▶2016년 6월 : 자질 논란 최진하 경기위원장 위촉, 경기위원장 자격 조건까지 6년 이상 → 4년 이상 조정하면서 강행
▶2016년 8월 : 수장도 없이 KLPGA투어 중계권(5시즌) 야밤 날치기 통과, SBS·SBS플러스 5년 375억원 계약-JTBC골프 3년 300억원 제안 거부
▶2017년 2월 : 집행부 만행으로 기강 흔들리면서 ‘무법지대’로 전락, 회장직무대행 맡은 강춘자 수석부회장은 경기위원회 규정 위반 사태 무마
▶2017년 10월 : KB금융 스타챔피언십 1라운드 불공정한 판정에 선수들 집단 반발, 1라운드 전면 취소와 대회 54홀 축소 초유의 사태
▶2017년 12월 : 물의 일으킨 최진하 경기위원장 재선임 ‘막장 드라마’, 사직서 수리 않고 유예하다 피해 입은 선수들 고려하지 않고 이사회 통해 2년 재선임 결정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