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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 톰슨의 파란만장했던 2017년

이시연 기자2017.12.13 오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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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중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대회장의 상황은 렉시 톰슨이 우승하기 위해 잘 짜인 각본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톰슨은 우승할 경우 수상이 확실시된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은 물론 올해의 선수상과 세계 랭킹 1위까지 확정지을 수 있었다. 미국 팬들의 모든 관심이 톰슨에게 쏠린 가운데 톰슨은 16번 홀까지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아내는 환상적인 라운드를 펼쳤다.

파5 17번 홀. 톰슨이 까다로운 위치에서 완벽한 칩샷으로 버디를 성공시키며 2타 차 선두로 앞서가는 상황이 되자, 현장은 톰슨의 우승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러나 마지막 18번 홀에서 믿어지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 톰슨의 악몽은 두 번째 샷이 홀 왼쪽으로 18m 거리에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빠른 내리막에 놓여 있는 어려운 퍼트였지만 톰슨은 첫 번째 퍼트를 홀 50cm 거리로 보냈다.
그러나 이후의 상황은 모두가 아는 결말이 벌어졌다. 톰슨의 파 퍼트는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홀을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보기를 기록한 톰슨은 14언더파를 기록한 제시카 코다와 동타가 됐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연습 그린으로 향한 톰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톰슨의 보기는 뒷 조에서 경기했던 에리야 쭈타누깐에게는 기회였다. 그리고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쭈타누깐은 마지막 2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연장전을 기대했던 톰슨의 희망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 벌타 악몽으로 날린 메이저 우승컵

올 시즌 2번의 우승과 최저타수상 그리고 100만 달러 보너스인 레이스 투 CME 글로브를 차지한 톰슨이지만, 그에게 이번 시즌은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이 들 해로 남을 것 같다. 톰슨의 2017년은 그만큼 골프 코스 안에서도 그리고 코스 밖에서도 파란만장했다.

불운의 전조는 시즌 개막전인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부터 드러났다. 톰슨은 2라운드에서 12언더 61타라는 놀라운 스코어로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는 듯했다. 그러나 우승의 여신은 톰슨이 아닌 브리타니 린시컴을 향해 손을 들어줬다. 린시컴은 최종일에 선두에 2타 차로 출발했지만 5타를 줄였고 톰슨과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톰슨으로서는 18번 홀(파5)에서 세 번째 벙커 샷을 홀에 잘 붙이고도 버디 퍼트를 넣지 못해 다 잡았던 우승을 놓친 셈이었다.

물론 개막전의 아쉬움은 시즌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의 불운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최종 4라운드에서 2타 차 단독 선두로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던 톰슨은 13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믿기 힘든 이야기를 전달 받았다. 경기위원은 톰슨에게 다가와 ‘하루 전인 3라운드 도중 그린에서 볼을 마크한 뒤 미세하게 다른 위치에 내려놓고 경기를 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벌타를 부과했다. 2타 차 선두였던 톰슨은 졸지에 전날 오소플레이로 인한 2벌타와 함께 잘못된 스코어 카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2벌타를 더한 4벌타를 부여 받았다. 톰슨의 벌타 부과는 텔레비전 중계를 보던 한 팬의 제보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톰슨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 농담하는 것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경기를 이어간 톰슨은 다시 열세였던 경기를 만회해 연장전까지 승부를 이어갔지만, 결국 유소연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 어머니의 암투병과 할머니 작고

톰슨은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 뒤 첫 출전한 발룬티어스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에서도 “여전히 악몽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런 톰슨의 모습에 “멘털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다”는 평가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톰슨은 두 달 뒤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벌타의 악몽을 극복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우승의 기쁨에 젖어 있었던 그 시간, 톰슨은 어머니 주디가 자궁암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미 한 차례 유방암으로 투병했던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톰슨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톰슨은 6월 초 수술대에 오른 어머니를 위해 투어 활동 중단을 고려했다. 그러나 어머니 주디는 “톰슨이 코스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톰슨은 힘든 상황에서도 어머니를 위해 힘을 냈다. 6월에만 두 차례 연속 2위를 차지하면서 슬픔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톰슨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항상 싸워서 이겨냈다. 나의 가장 큰 롤모델”이라고 했다.

톰슨은 6월 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는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리고 9월에는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톰슨의 우여곡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9월 말에 할머니를 잃는 슬픔이 이어지자 톰슨은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고 가족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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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 끝에 더 성숙해진 톰슨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은 톰슨에게 남다른 의미의 대회였다. 어머니 주디가 자궁암 완치 판정을 받으면서 투병 이후 처음으로 대회장을 찾은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대회를 치른 톰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루프 안에서 경기를 하다가도 어머니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그러나 어머니 앞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고 싶었던 톰슨의 꿈은 본인의 바람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래도 톰슨을 달라져 있었다. 이번엔 올 시즌 내내 이어진 불운에 대처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톰슨은 믿어지지 않는 불운의 패배 뒤 잠시 눈물을 보였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미소를 보였다. 톰슨은 올해의 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유소연과 박성현에게 먼저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주디도 유소연과 박성현에게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이 목격됐다. 톰슨은 “골프는 그저 골프일 뿐이다. 이런 일도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톰슨은 올 시즌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지고, 더 성숙해져 있었다.

이시연 기자 siyeon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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